2026. 5. 8. 22:36ㆍrotemtree/생기의 찬양
예수로 사네
- 작사/작곡 정하나
https://youtu.be/DJb3sINC6qg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막막함
디딜 곳도 머물 곳도 쉴 곳도 없는 삶
이 어둠 속 암흑 한가운데를
홀로 바라보시는 분
아무도 없는 이곳으로
다가오시는 그 한사람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사네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막막함
디딜 곳도 머물 곳도 쉴 곳도 없는 삶
이 어둠 속 암흑 한가운데를
홀로 바라보시는 분
아무도 없는 이곳으로
다가오시는 그 한사람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사네
예수로 사네 그 힘으로 서네
예수와 가네 그의 길로 걷네
그 안에서 보네 그 영광을 보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로 사네 그 힘으로 서네
예수와 가네 그의 길로 걷네
그 안에서 보네 그 영광을 보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로 사네 그 힘으로 서네
예수와 가네 그의 길로 걷네
그 안에서 보네 그 영광을 보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로 사네 그 힘으로 서네
예수와 가네 그의 길로 걷네
그 안에서 보네 그 영광을 보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2026년 5월 11일 저녁부터 온통 이 찬양만 들었다.
가사가 다시 새롭게 다가 왔다. 엄청 큰 은혜를 받았다.
가사 하나 하나를 깊이 있게 들어가 보자.
1. 가사 구성
가사1과 가사2의 단조로운 구성을 볼 수 있다.
---------------------------------------------------
(가사1)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막막함
디딜 곳도 머물 곳도 쉴 곳도 없는 삶
이 어둠 속 암흑 한가운데를
홀로 바라보시는 분
아무도 없는 이곳으로
다가오시는 그 한사람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사네
(가사2)
예수로 사네 그 힘으로 서네
예수와 가네 그의 길로 걷네
그 안에서 보네 그 영광을 보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
(가사1)은 과거나 현재의 내 모습 또는 막막한 암흑으로 귀결되는 절망을 표현하며
그 암흑의 중심... 절망한 나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
예수.
그 예수는 살리시는 분이고, 내가 예수로 산다는 것을 노래합니다.
* 가사1을 2번 반복합니다.
(가사2)는 곡조가 빠르고 조금 밝아지는 반전이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도 다릅니다.
암흑이 없다. 절망도 없습니다.
이것을 바꾼 근원이 예수입니다.
주어는 노래하는 당사자인 나 뿐인 것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로 사는 것을 외칩니다.
그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을 선포합니다.
나의 가는 걸음이 예수와 함께 걷습니다.
그 길이 곧 예수가 걷는 길인 것이 달라졌습니다.
(가사를 다시 보라! 내 길이 아닌 예수의 길입니다.)
그러하기에 나는 예수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예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쉼표만 추가하였습니다.)
I live as Jesus, through the life of Jesus.
이 부분이 핵심 어구라고 생각하는데...
영어로 단순 번역을 하여도
예수로 => as Jesus, for Jesus
예수의 삶으로 => through the life of Jesus
내가 살아가는 삶이 아닌, 예수로. 예수란 존재로 내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의 삶을 관통하는 살아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포인트도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살펴볼 부분이 있는데.
가사1에서 가사2로의 변화를 누구보다 노래하는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는
1. 나는 이미 변화된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 나는 암흑에서 영광의 변화를 알고 있기에,
암흑의 절망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의지적인 결단을 선포합니다.
3. 이 변화의 주인공이 되신 예수을 높이고 싶습니다. 알리고 싶습니다.
가사2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이 예수는 누구이셨는가?
예수는 살리시는 분 이십니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를 예수를 강조하며 이 노래는 마무리되는 구조입니다.
2. 깊은 의미
*작사가와 작곡가가 정하나님이시고, 이 자리를 빌어서 한국 예배 찬양곡을 빛내주셨다고 깊이 생각하게 하며
함께 사역하는 카다로스 사역팀과 서포터즈의 물심양면으로 도와서 만든 걸작품의 앨범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심에 함께 기뻐하며 글을 올립니다. (우리 서로 계획하진 않았지만, 2026년에 저는 이 곡을 알게 되었네요. 2013년에 발매 되었는데... 뒤늦은 발견으로 . 대신 곡이 담은 은혜를 충분히 풀어보도록 해 볼께요.)
글이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깁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경험한 예수로 사는 자의 노래입니다."
곡과 찬양 영상을 보아서도 팀이 혼연 일체가 된 감동과 전율을 느끼면서...
카다로스 3집 - 예수로 사네 앨범 소개를 참고해서 본다면,
팀원들의 삶과 사역의 중심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전달하고자 하는 카다로스의 열정과 진심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찬양을 통해 카다로스 뿐 아니라 예수로 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가 함께 할 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작곡자의 작곡노트까지 참고할 수 있도록 자료가 찾아졌는데요.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작곡노트 전반 스토리를 올립니다.
이 곡은 예수님을 떠올렸을 때, 나누고 싶은 내용을 담은 찬양입니다.
내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라는 물음에
그 분은 살리시는 분입니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찬양입니다.
성경의 많은 스토리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백들로 이어지고 있고
이 찬양 또한 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있어서 예수님은 살아가면서 지나가게 되는 어둡고 막막한 시간과 한계 속에서
존재가 드러나지신 분이고
삶의 새로운 시각과 동기를 갖게 하신 분입니다.
나를 살리시고 또한 살아가게 하시는 분,
그리고 같이 걸어가는 동행의 삶 속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요한복음 10:10
이러한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부르고 계속 넣어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가사에 그 이름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로 인해 새롭게 시작된 삶이
길이 되신 예수님과 함께 걷고
그 여정 가운데 그분의 영광을 보며 살아가는 것.
이것을 노래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어떤분인지 노래하는 많은 고백들이 있습니다.
그 찬양들을 통해 깊이 공감하기도 하고
새로운 고백을 드리게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그 분에 대한 더 많은 노래들과 함께 하며
저를 통해서도 찬양들이 더해지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가사1) - 1부분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막막함
디딜 곳도 머물 곳도 쉴 곳도 없는 삶
현대인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입니다.
작사가는 "살아가면서 지나가게 되는 어둡고 막막한 시간과 한계 속에서" 표현과 같이
사람은... 누구나...
깊은 터널, 존재를 지우고 싶은 공허와 무의미들...
자신의 존재는 알겠는데... 그 존재에 대한 도전들에서 존재적인 답이나 의미적인 해석이 불가할 때에...
이런 철학적인 것 말고도,
욕망과 욕구, 좌절과 절망의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죄성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까지 보게 된다면...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절망. 죽음의 자리(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의 상황에서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는데요.
(가사1) - 2부분
이 어둠 속 암흑 한가운데를
홀로 바라보시는 분
아무도 없는 이곳으로
다가오시는 그 한사람
이 어둠... 그리고 그 어움 속은 암흑 한 가운데를
바라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암흑 한 가운데에
내가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이 노래 전반에 나를 표현하지 않지만
노래하는 것도 나였고, 절망에 빠진 것도 나.
예수의 삶으로 변화된 것도 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구지 표현하지 않는 대비가 있다고 생각해요.
암흑 한 가운데 있는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죽음을 경험하는 해석을 해 봅니다.
암흑과 같이 존재가 없어진 죽음의 경험.
그러하기에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 암흑의 한 가운데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사를 해석해 가면서
(가사1)이 두번 반복되는데요.
홀로 바라보시는 분이
두번째 반복되는데에서는
홀로 걸어오시는 분으로
자연스럽게 해석이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친히 걸어오시는 것을 넘어서
나의. 우리의. 질고와 고통을 걺어지시고
먼저 가신 십자가의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요한복음 1:1~5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한복음 1:9~1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이사야 53:4~5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 마태복음 27:41~54

(참고자료)
카다로스 3집 - 예수로 사네 : https://v2.akbotong.com/album/12177
예수로 사네 작곡 노트: https://youtu.be/DijjsYLxV2A
죽음에 이르는 병 - 쇠렌 키르케고르: https://yosiah.tistory.com/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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