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 사랑 -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2017. 4. 2. 14:58로뎀나무/생기의 찬양

십자가 그 사랑
-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https://youtu.be/0MylJEFFD0M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 같은 내 마음 어루 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주 너를 보호하시고 널 붙드시리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지 않고  
이전에 행한 모든 일 생각지 않으리
사막에 강물과 길을 내시는 주  
내 안에 새 일 행한신 주만 바라보리라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주 너를 보호하시고 널 붙드시리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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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2일 응답의 찬양으로 https://cafe.naver.com/yosiah/167
2022년 12월 18일 주일 은혜로 https://cafe.naver.com/yosiah/78

쉽지 않은 관계들...
믿음의 고백으로 찬양을 띄워보았다.
내가 말이 많다고 하여서 키워진 재능을 숨기거나 죽일 수도 있어야 하겠구나...
생각해 보게 된다.
찬양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주일 예배 후에 다시 듣게 되니 감동이 쏟아 오른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살아가리요.

(2017년 4월..)
* 요즘 별다른 토(의견)를 달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영유아부 부모예배 시간에 마지막 찬양에서 은혜를 많이 받아 글을 남겨 본다.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의 자녀라.

이렇게 찬양을 불러본 적이 언제인지? - 모르게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남들에게 치이고 자신이 자신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것이 극단으로 치달아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의 자녀라.
들리워지는 울림에 나 자신은 어떠한 생각이 드는지?

사랑을 할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세대.
어느 누가 이 사랑한다는 것에서 완전할 수 있겠는가?
다시, 어느 누가 이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에서 온전할 수 있겠는가?
사랑에 불완전한 인간의 이 절대 부족함 앞에서 울 수 밖에 없는 것을 체감한다.
오늘 체감의 강도는 내 자녀 앞에서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예배는 영유아부 예배이니 말이다.
나의 자녀가 내 앞에 있다.
나는 내 아들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너무 연약하고 때때로 내 감정과 상태에 따라서 아들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랑이 아닌가!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다가오는 아들에게, 내가 바쁘다고 저리가라고 소리치는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것이 일상의 모습인 것이다.

삶을 지지하는 몇가지 버팀목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지점, 삶을 지탱하는, 삶의 근원, 생명되신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를 만나게 하는 오늘의 찬양이 되었다.

이것은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존재가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고.
그 사랑하는 것을 지속하는 생명을 주셨다.
그리고 그 생명은 실제적으로 내 자녀로도 내 삶에서 다시 나타나는 영광을 경험하고 체험되도록 한 그 은혜를 생각해 본다.
그 사람은 사랑을 하는데 실패한 사람.
사랑을 받는데 포기한 사람이었는데.
오늘 이 시간.
내 사랑을 바라는 자녀는 완전히 하늘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 속에 비춰진 주 은혜

돌 같은 내 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지 않고 
이전의 행한 모든 일 생각지 않으리

사막의 강물과 길을 내시는주 내 안의 
새 일 행하신주만 바라보리라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의 자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