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수행자와 밥│다람살라의 수행자 8편

2019. 7. 15. 12:57사는 이야기

세계의 수행자와 밥│다람살라의 수행자 8편

Posted on 2013-04-03 by 대한불교진흥원
 


▲ 규토 사원에서 논쟁을 가르치는 따시 스님의 방안에서‘티베트 향우회’가 열렸다. 휴일을 맞아 찾아온 고향 제자들과 노트북에 담겨진 고향 관련 사진과 자료를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티베트 향우회’의 최고 귀빈, 노트북

매주 토요일이면 카르마파가 주석한 규토 사원은 세계 각국의 손님들로 북적인다. 티베트불교의 4대 종파 중 하나인 카규파의 수장이며 달라이 라마에 이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카르마파를 친견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15∼16세기경 카규파를 중흥시킨 초대 카르마파는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이자 달라이 라마가 수장으로 있는 겔룩파가 세력을 갖기 이전까지 수백 년간 티베트 불교를 이끈 최고의 지도자였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불보살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며 환생을 거듭해온 카르마파는 현재 17대를 이어가고 있다. 

▲ 공부에 대한 열의와 신심으로 가득찬 아니(티베트 여성 출가자)들과

함께 나누는 차 한잔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17대 카르마파로 인정받은 외겐 틴레 도르제가 중국 통치하에 있는 티베트에서 극적인 탈출을 시도한 것은 1999년 겨울, 그의 나이 14세 때의 일이다. 달라이 라마의 견제 세력으로 카르마파를 추대해 이용하려 했던 중국 정부의 계략과 압력에 시달리다가 인도로 망명한 그는 겔룩파 사원에 머물면서 달라이 라마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왔다. 망명을 계기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온 그는 현대 티베트 망명자들에게는 티베트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갈 것을 당부하며 힘이 되는 한편, 서구 사회에 티베트의 상황과 불법을 알리는 차기 지도자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런 그를 가까이에서 친견한다는 것은 티베트인은 물론 다른 나라의 불자에게도 영광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유창하고 다양한 외국어 실력을 갖춘 카르마파가 한국어에도 능숙한 편이라는 소문이 있어 기대가 더욱 컸다. 그런데 웬걸. 오늘은 다람살라에 머문 이래 처음으로 운이 억세게도 없는 날이다. 꽤 오랜 시간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규토 사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카르마파가 바로 전날, 델리로 떠났다는 정보를 알게 된 것이다. 더욱 절망스러운 소식은 당분간 그를 친견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한동안 델리에 머물면서 명상에만 전념할 계획이라고 한다.  

▲ (왼쪽) 17대 카르마파가 주석하고 있는 규토 사원의 법당 전경

   (오른쪽) 매주토요일이면규토사원은카르마파를친견하기위해세계각국에서참배객들이찾아온다.

한 주만 일찍 방문했더라도 한국어로 인사를 나누며 카르마파를 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그야말로 오는 날이 장날이 됐다. 하지만 버스에서부터 일정을 함께한 왕두 할아버지에 비한다면 억울할 일도 아니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남인도에서부터 몇 날 며칠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온 그는 달라이 라마와 카르마파를 친견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순례길을 떠나온 것이다. 그런데 하필 다람살라에 도착한 며칠 전에 달라이 라마도 초청 법문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 상황이었다.

실망과 낙담이 커서인지 왕두 할아버지의 안색은 아예 표정을 잃어버린 듯하다. 한동안 나무 그늘 아래에서 사원 너머 펼쳐진 설산만 응시하고 앉아 있던 그를 다시 만난 곳은 법당 안이었다. 어느새 온몸을 바닥에 눕히고 겸허히 절을 올리는 그의 모습이 소리도 없이 간절하고 숭고하다. 체념을 넘은 수용은 더욱 지극한 신심과 정성과 겸허함으로 이어져, 한 배 한 배 올릴 때마다 허허로운 듯하나 충만한 에너지로 채워진다. 기도의 힘…. 티베트인의 영적 에너지의 원천일 것이다.


▲ 규토 사원의 스님들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법당 안팎에 자리 잡고 앉아 경전을 암송한다.
 

억세게 운 좋은 날
 
규토 사원에 지인이 있다는 사실이 문뜩 떠오른 것은, 법당을 나와 사원 한쪽에서 만다라를 만들 재료를 준비하는 티베트 스님들의 모습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주지 스님에게서 자신의 도반인 따시 스님이 규토 사원에서 논쟁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따시 스님은 다람살라에 도착한 첫날,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듣기 위해 처음으로 남걀 사원을 방문할 때 도움을 준 스님이기도 했다.

통통한 체격만큼이나 성품도 넉넉하고 자비로운 따시 스님은, 첫 만남의 기억에서처럼 시종일관 밝고 따뜻한 기운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 예고 없는 방문에도 그저 반가워하며 기뻐하는 모습에 마치 한 고향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다. 그의 방 안에서는 이미 향우회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방금 전에 식사를 마쳤는데,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놨으니 좀 들어보실래요?”  

집에 온 손님을 배불리 먹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은 티베트인도 한국인 못지않다. 음료수와 과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몇 번이나 사양해도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며 음식을 권하던 스님이 결국엔 방 한쪽에서 음식을 푸지게 담아 내왔다. 여러 종류의 음식이 접시 위에 가득하다. 당면과 각종 야채를 볶아 만든 최마와 콩깍지 요리도 있고, 토마토와 양파, 오이를 함께 썰어 넣고 새콤하게 절인 밑반찬은 그 비법을 알고 싶을 만큼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휴일을 맞아 찾아온 인근 사원의 제자들과 한 고향 사람들을 위해 스님이 직접 정성껏 요리한 음식들이라 그 맛이 더욱 각별하다.

그런데 이른바 ‘티베트 향우회’에서 가장 중한 귀객은 맛난 음식도 사람들도 아닌 허름한 노트북 같다. 식사를 끝낸 이들이 노트북을 방 한가운데 ‘모셔’놓고 담소를 나누며 노트북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 안에는 티베트 현지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내온 다양한 사진과 축제 기념행사와 최근 유행하는 뮤직 비디오까지 고향과 관련된 소식들로 가득하다. 방 안은 즐거움과 애잔함, 설렘과 슬픔이 수시로 교차한다. 가족과 이웃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숨을 죽였다가 웃음보가 터지고, 웃음보가 터졌다가는 이내 고요해진다. 봄을 맞은 고향의 풍광은 억압된 체제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푸근하고 정겹고 아름답다.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그곳에도 계절 따라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자유를 잃어버린 부모와 형제들, 이웃들, 친구들이 설산 너머로 떠나보낸 가족과 이웃들을 위로하기 위해 되레 힘차고 밝게 웃고 있었다.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진 것은 동영상 속의 티베트 가수가 전통복 차림에 화사한 머플러를 두르고 나와 리듬에 맞춰 “스승님, 당신을 따라 부지런히 불법을 배우고 익혀 자비를 실천하렵니다”라는 가사의 유행곡을 부르면서부터다. 최신 유행곡에도 불법을 따르고 수호하려는 전통과 의지가 담겨 있을 줄이야, 티베트인들의 타고난 불심과 기상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 돌마링 곰빠의 아니들이 10여 명씩 팀을 이뤄 논쟁을 공부하고 있다.

논쟁은 사유와 이해의 깊이를 훈련시키는 티베트만의 독특한 불교 공부법이다.

다람살라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 카르마파를 친견하고자 나름 제법 먼 길을 나선 것이라 규토 사원 인근에 있는 돌마링 곰빠를 들러 가기로 했다. 200여 명의 아니(티베트의 여성 출가자)들이 수행하는 돌마링 곰빠는 노블링카의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늦은 오후, 경내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는 한바탕 야단법석이 났다. 티베트만의 독특한 불교 공부법인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일대일의 격렬한 토론과도 같은 형식을 취하는 논쟁은, 불법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속에서 논리적이고도 깊이 있는 사유와 이해의 힘을 키우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논쟁은 조금 특이하다. 이른바 단체전이라고 할까, 10여 명의 아니들이 한 팀을 이뤄 중앙에 앉아 있는 스승을 향해 답과 물음을 주고받는 식이다.

넓은 법당을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불법을 배우는 아니들의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법당 문밖에서는 이들의 열의만큼이나 뜨겁게 달궈진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 담당 아니들이 커다란 찻주전자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시기적절한 순간에 들어와 차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내 앞에도 뜨거운 차 한 잔이 놓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억세게 운이 나쁜 날이라기보다는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다. 지나가는 구경꾼에게도 따끈한 차를 가득 챙겨 주고, 식기 전에 마시라며 손짓해 보이고, 차를 마시다가 눈이 마주칠 때면 무안하지 않도록 엷은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가슴 따뜻한 수행자들과 홀짝홀짝 즐기는 차를 세상 어디에서 맛볼 수 있을까? 불법을 공부하는 중에도, 기도를 올리는 중에도 틈틈이 차를 마시고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는 티베트의 수행자들. 이들과 함께하는 밥맛, 차맛에는 확실히 특별한 미학이 있다. 밥과 법이 다르지 않다는 듯, 밥은 그저 법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듯, 그런 일깨움의 미학이….
 

▲ 논쟁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법당 문밖에서는

차 담당 아니들이 적절한 때에 차를 들이기 위해 대기 중이다.

글·사진 함영|‘곰탕에 꽃 한 송이 꽂기’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고, ‘생각 없이 글쓰기’와 ‘생각 없이 사랑하기’를 꿈꾸는 글쟁이다. 주요 저서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곰탕에 꽃 한 송이』가 있다. 글짓기가 고행이 아닌 낙(樂)이 될 때까지 글짓기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