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3. 14:59ㆍ교육
흔들리는 부모와 교사를 위한 교육론
아이는 당신과 함께 자란다-이철국
이 책을 나의 가장 친근한
세 벗님이자 스승에게 바친다.
자기 생각에 갇히지 않는 유연함.
일상에서 느끼는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배우려는 마음.
첫 장이 너무 멋있어서 남겨 봅니다.
오늘 하늘 보셨어요.
오늘 같은 날은 하늘만 봐도 행복해지네요.
문득 필름이 감기듯 지나가는 기억들이 스쳐지나가는 느낌.
다들 느껴보셨나요?
으로 시작하는
2017년 사사학교 아그리나 파송식 - 박은택 졸업사
https://yosiah.tistory.com/644
졸업사를 접하고 바로 포스트를 남겼습니다.
앞으로 아이를 낳게 되면 저런 아이로 교육을 하리란 마음을 먹었습니다.
두 아이, 형제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네, 아직 많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오늘 마주한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자란다. 라는 명제를 던지며...
자기 생각에 갇히지 않는 유연함.
일상에서 느끼는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배우려는 마음.
이것만 심겨져도 교육의 기본은 다졌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감동을 담아 글을 기록해 봅니다.
(일상이 바뻐서 읽는 것이 느릴지는 몰라도...)
1. 진화하는 아이들
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등에 메고 오는 것은 가방만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가정의 색다른 문화를 함께 메고 온다.
아이는 교실에 가방을 풀어 놓으며 자신의 개성과 문화도 풀어 놓는다.
그것을 또래와 나누면서 학급과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문명과 문명이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격렬하게 조우한다.
학교 일상에서 아주 근원적인 면을 잘 나타내 주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각자의 소문명이 또 다른 소문명과 충돌하거나 놀라운 생각들이 퍼져나아간다.
학교에 가고 싶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 아이는 일직선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농사의 기쁨이 수확만은 아니듯 교육도 성장의 감동으로만 이루어지진 않는다. 태풍과 가뭄으로 소출이 없는 좌절의 시기가 있듯이 나의 무능과 뜻하지 않는 사건, 잘못된 인연 등으로 아이의 교육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교육은 농사보다 더 힘들고 오래 걸리는 과정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일탈을 하고 퇴행하거나 웅크리기도 한다. 이때가 중요한 순간이다. 현명한 부모는 알아채고 기다린다. 이를 견디지 못하는 부모가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가 잠시 웅크리는 건 도약을 위해서 발판 위에 올라서는 일이다. 당장 도약하지 못하더라도 인생에서 꼭 필요한 숙성의 기간이다. 만약 부모와 교사의 이해와 보살핌 속에서 아이가 잠시 일탈한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자연스럽게 다가온 이 과정을 무시하거나 억압한다면 나중에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큰 일탈과 방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탈하고 방황하는 아이가 자라서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할까 걱정이겠지만 사실 부모도 예전에 다 그랬다. 그런데 지금 잘 살고 있지 않는가? 청소년기의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면을 보고 아이 인생 전체를 재단해 버린다면 그건 전형적인 선입견이다. 다만, 지나치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면 이 경우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부모의 거짓말과 숨김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락, 게임을 좋아했다. 물론 포르노도 봤다.
이제 아이들과 그러한 일탈을 마주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나이스하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나로써는 오락과 게임을 조금 자유도를 높여서 허락해 주고 있다... 반대로 나는 욕구 불만의 삶을 살았고, 미치도록 할 때가 있었고, 부모님이 너무 못마땅했었다. 결국 이렇게 이야기할 날도 성인을 맞이할 19세가 되면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을 얼마 남지 않는 대화의 찰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느린 성장, 숙성
시간과 성장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아이가 자기 인생 중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그냥 건너뛸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그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노는 시간은 그대로 두고 수업은 그냥 건너뛰었다. 빨리 결혼하려고 대학도 건너뛰었다. 자녀가 자라는 시간도 건너뛰었다. 퇴직 후에는 불만스런 노인 생활도 건너뛰었다. 결국 그는 얼마살지 못했다. 계단은 건너뛸 수 있지만 하루하루는 건너뛸 수 없다. 내 인생에서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건너뛸 수는 없다. 설령 건너뛰더라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을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성장의 기회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힘들고 지루한 것을 넘어서, 내 자신이 자라는데에는 얼마나 힘들고 지루한 지를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을 밀미로 나의 자라는 것을 건너뛴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느린 성장을 못참아 하는 인스턴트 시대에서
원래 우리들은 걷지도 못한 존재들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 만남을 통해 탈바꿈하는 아이
교육은 무엇인가? 아이에게 삶의 규칙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 사회 공동체 속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세상에서 배워야 할 전부다. 이것을 소홀히 한 결과 오늘날 사람들은 새로운 미성숙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자기 몸 바깥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의식주를 구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서로 주고받기에 서투르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아이는 각자 다른 문화를 서로 나누는 방법을 아슬아슬하게 익혀 간다. 집에서 지낼 때와 달리 공동생활에서는 때로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우친다. 종종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하지만 파탄으로 끝나가보다는 대개 융합의 길로 간다. 곤충이 알에서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변태(metamorphosis)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는 곤충과 달리 겉모습은 별 차이가 없어도 속은 완전히 달라지는 변태(탈바꿈) 과정을 겪는다.
교육이 아이의 성공과 부귀영화를 얻기위한 스팩쌓기? 같이 치우쳐진 현실에서
"아이에게 삶의 규칙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가온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 연대에 대하여
https://yosiah.tistory.com/1054
대한민국 사회에 서로를 몰라가고, 함께 살아가는 연대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가르치고 않았는가? 라는 반성을 가져본다.
우리가 서로를 함께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을 가져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의 문화는 태동기라서 거칠 수 있고, 부모의 완강한 문화와 격돌하면서도 가정내의 긴장이 있을 수 있을텐데... 학교와 공동생활에서의 만남을 변태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좋은 이해의 안목과 깊이를 갖게 하였다.
변태는 애벌레에 성충이 되는 완전한 탈(모형) 바꿈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겪는 본인은 얼마나 큰 고충이 따를까를 되생각해 본다.
- 의존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자립심과 상호의존감이 한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능력과 기술만이 살 길이라고 교육을 하는 미래 시대에서 좀 다른 갈래이긴 하지만, 유수한 미래지향적인 기업들은 도움을 주고 받는데에 탁월하다.
뇌 가소성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진다. 기쁘게도 인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려 있고 무긍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뇌는 외부로부터 감각을 받아들여서 뭔가를 배우고 운동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삶을 진정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항상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죽는 순간까지 '새싹'이 자라는 뇌가 있는 한 포기해도 되는 일 따윈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넌 할 수 없어' 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보다 내가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는 것을...
생각치 않을 수 없다.
난 할 수 없어. 를 깨치고 나아가야 하는 인생이다.
교육 현장에서 실패하는 아이가 없어야 하듯, 실패하는 교사도 없어야 한다.
노파심에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다. 30년이 넘은 교직 생활을 통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 열심히 배우고 잘 가르치는 것은 일견 자아실현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가르침에 있어서는 교사의 자아실현이 앞서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아실현보다는 아이가 먼저다. 실상 거기서부터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러면 자아실현은 저절로 따라온다.
자아실현 vs. 아이 교육을 대별하는 대목에서 좀 의아스러우면서도 거북했다. 40대 중반의 나는 지아실현의 마지막 고점대로 가고 있기도 하고, 좀 그러한 부분에서 목말라 있었다. 성공하는 것에 마지막 보루인 것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많은 설명없이 자신의 단상... 아니 30년의 교직 생활을 통한 짧은 통찰이 나를 어지럽게 한다..
그리고 아이를 먼저 거두면 자아실현이 따라 온다라고 하였다.
대체 교육과 자아실현의 기준과 정의를 우리는 어떻게 가져가고 있는지? 되살피지 않을 수 없다.
더 많은 벗들이 필요하다.
생각대로 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면, 사람이 잔인해지거나 비루해지는 듯하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았다고 한다. 별다른 성격장애도 없고 오히려 근면 성실했다. 이에 아렌트는 그의 잘못은 단 하나, 바로 '생각하지 않음' 이라고 결론 내린다.
아이히만을 닮은 유대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가스실로 보낼 유대인 명단을 작성하고, 죽음을 면할 이를 선별하고, 수용소에서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그들은 왜 거부하지 않았을까? 아렌트는 이 역시 '생각하지 않음' 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악의 평범함(또는 비루함)'을 다룬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에서 금서였다.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자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서 번식한 악이 세월호 침몰과 함께 이 땅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내 우리 곁에 잠복해 있던 것들이었다. 우리 삶은 항상 평범한 선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악이 있다면 평범한 선도 있다. 평범한 선은 소통과 존중, 책임감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힘' 을 지닐 때에나 가능하다.
생각하는 힘이란 곧 배움을 뜻한다. 배움은 인간과 세상을 지속적으로 알아 가는 것이다. 단박에 깨달아서 한 번에 끝나는 공부는 없다. 약 5,6만년 전 진화를 멈춘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와 각축을 벌이다가 사라졌다. 호기심으로 충만한 호모사피엔스만이 호모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은 호모사피엔스 운명이다. 공부를 안 해도 알 수 있다면 모를까, 만약 모르는데도 배움을 외면하면 평범한 악이 슬금슬금 깨어날 것이다.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 에 참으로 웅대하고 호방한 글이 나온다.
온 세상 사람 눈을 내 눈으로 삼으면 모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고, 온 세상 사람 귀를 내 귀로 삼으면 모든 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으며, 온 세상 사람 마을을 내 마음으로 삼으면 모든 것을 슬기롭게 생각할 수 있다.
세상에 눈감고 자기만의 성을 쌓는 사람은 세상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파멸한다. 자신의 성을 부수고 나와서 이웃과 마주 앉는 것이 곧 살아가는 힘이다. 이처럼 자신을 확장시켜 이웃과 접속하려면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섦과 불편함을 감수할 때 배움과 각성이 찾아온다. 나의 경우엔 자연과학을 공부할 때가 그랬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결국 나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기쁨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 땅에서 처음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한 이들은 무척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미지의 땅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모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흔들리는 그 한 걸음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안교육도 없다. 20년이 지난 지금, 변화된 환경은 새로운 요구를 한다. 대안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벗이 필요하다. 다른 생각, 미지의 것, 그리고 '왠만한' 사람들과 접속하자. 다양한 경계를 넘어서 지금까지 함께한 적 없는 이웃과 연결되자. 대안교육의 가치를 전파하고 힘을 키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선한 길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인생에서 많은 벗들이 필요하고, 또 많은 만남과 사귐, 그리고 헤어짐까지 생각한다면... 사람 각 주체들간의 만남과 지냄이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하기에 교육에서의 사람을 사귀는 것과 사물과 지식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스스로 소화, 즉 해석하며 가치를 판단하여서 반응하는 것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을 교육적인 목표로 배워가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하지만... 현실 교육과 부모의 소양 자체가 편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안 교육자체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 또 자기 우물 안으로 빠져있지 않으려는 자세만 갖추는 것만으로도 진일보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전히 교육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 고민이 다음 교육으로 이어질 것이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무수한 질문들이 딩신과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더 살 만한 세상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멋진 말씀으로 마무리 해 주셨다.
그렇다. 아직 희망이 있고, 변화의 싹을 이제 띄웠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 - -
공교육과 대안교육에서 교육을 해 오신 교육자분이 기록해 주셔서 대안교육에 현재 위치와 나아갈 길을 보게 해 주신 점에서 특별한 책이었다.
다만, 대안적인 교육, 유기농(organic) 교육에 이르는 대한민국 교육 정책적인 편협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며, 앞으로 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확실히 변해졌다. 치열한 경쟁구도속에서 얼마나 창의와 다양한 의견과 재능들을 모아서 최선을 다하는 협력을 이끌어 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업에 대한 인식을 현실적이며 학생 자신의 평생 살아갈 기능과 재능개발 그리고 자아실현을 대안교육에서 깊이있게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냐하면 공교육의 입시위주 교육방향에서는 직업찾기와 직업계발에 이르는 과정을 잘 소화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와 모순이 있겠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공립학교교육만이 교육인가?
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가져보게 하며, 공교육 - Public Education 이 나온지..
200여년이 흘렀고, 다시 19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가정교육 중심과 서적과 스승 중심의 교육, 삶의 경험 중심의 교육이 전부였던 시대속에서 오늘의 미래를 일꿔 왔다는 사실을 되새겨 볼 수 있겠다.
정보의 홍수, 경험을 망각한 암기 교육, 널려있는 책들과 과잉교육으로 인한 배움을 잃어버린 아이들, 그리고도 교육구조 자체가 입시교육의 폐단 앞에 지금 현실 교육이 공룡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누가 이 교육 공룡 앞에서 다른 교육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러하기에 이 책이 전하는
"흔들리는 부모와 교사를 위한 교육론 아이는 당신과 함께 자란다" 라는 메시지는 대안 교육의 불완전성만을 말하는 것을 넘어선.
이 시대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인지? 교육의 본질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점검하는 책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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