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2012. 3. 18. 01:48ㆍ로뎀나무/세번째
몽고가 우리 나라에 쳐들어오자 그 흉악함은 거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살례탑이 어떻게 들어왔으며, 달로화적이 얼마나 사나우며, 차라대가 어떻게 침노해왔는지 하나 하나 다 말할 수 없다. 그건 또 해서 무엇 하나? 다만 한마디, "몽고 군사가 지나가매 개, 닭 소리가 없어졌다." 하면 그만이다. 고종 41년 차라대가 왔던 한때에 사로잡혀간 사람만 해도 30만 6천이라 하며, 서울 시가에 진을 치고는 여자들의 젖을 잘라 삶아먹었다는 말만 들으면 그 대략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그래도 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써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찢었다가 그래도 또 모아대고 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 역사,
이것이 역사냐?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내 나라요, 네 역사며 내 역사니라.
너는 이 나라에 왜 일찍이 났으며 나는 왜 이 나라에 또 무엇 하자고 났느냐?
아서라, 누가 나고 싶어 나는 인생이며 아니 살고 싶어 아니 사는 살림이라더냐?
어느 것이 하고 싶어 하는 나라며,
아니 지고 싶어서 아니 질 수 있는 고난의 짐이라더냐?
네 핏대 속에는 거란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아느냐?
내 핏대 속에는 몽고, 되놈, 왜놈, 아라사놈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아느냐?
아니다. 마야 부인의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는 석가의 혈관 속에는 드라비다, 인도, 아리안, 러시아, 이라크 가지가지 인종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다는 예수의 심장 속에는 다말, 아합, 룻, 우리아의 아내, 거지가지 여자의 피가 드나들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 맑은 물, 흐린 물 따로 없다.
역사의 음악에 높은 악기, 낮은 악기의 구별이 없다.
있는 것은 다만, 다만 오직 하나,
"살아라! 뜻을 드러내라!"
하는 절대 명령이 있을 뿐이니라.
- [뜻으로 본 한국 역사. p.2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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