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보이며 앞날에 대한 방향을 살펴 보고자
2019. 7. 21. 22:27ㆍ선교 교회이야기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보이며 앞날에 대한 방향을 살펴 보고자 아래에 기준과 정리를 한국 개신교회에게 바칩니다.
1. 기도의 나눔과 훈련과 자립
** 형제는 **나누미- 정신지체 장애인을 돕는 봉사와 강남지역 노방전도를 주도한 제2**의 대학선교회 (선교회 라서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조직이 있습니다.) - 의 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육아와 학업 이후로는 영성적으로 바닥을 치면서 훈련 받았던 것을 잊혀진바 된 것 같습니다.
믿음 생활의 상호 체크와 격려와 관계중심이 대두되는 대목입니다.
아래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될 항목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기도를 나눈 것 자체가 관계적인 부분으로 접근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나눔, 그리고 서로 기도함은 목회적으로, 초대교회적으로 적용과 실천이 필요한 것을 현재에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현재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기도의 내용을 들어가지도 않고, 기도의 관계적인 부분과 기도생활에서 상호 체크와 실천을 물어보는 상황인 것입니다.
2. 헬라적 주입 설교, 히브리적 하브루타 나눔
주입식 교육에 한계는 이미 한국 공교육에서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방식과 초대교회가 취했던, 하브루타 토론식, 질문과 답문식의 교육적 나눔 방식이 설교에서도 도입되어야 한다고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세 참조 내용)
헬라적인 사고는 무엇이든 제단되지고 개념이 잡혀야 합니다.
히브리식 하브루타 교육과 사고 체계에서... 주님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명확한 정의를 하나님 아버지께 주권이 있으시고 구원사의 처음과 마침이 있을 것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구원을 어떻게 헬라식으로 우리는 공부하고 학습하고 있을까요?
신학적으로도 어려운 부분이지요.
간단하게, 교단마다 교리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안내하고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것이지요.
만약, 자살한 가정에 심방을 한다면... 그러한 정리된 것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 되겠습니다.
멀리갈 것 없이,
설교라는 형식과 커뮤니케이션 방법적으로...
이상하게 왜곡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시지는 않으셨거든요.
파디온선교회에서도 삶을 변화시키는 교회교육 주제로 올라온 글의 헬라식 교육 요지 부분에서.
http://www.paidion.org/bbs/news_letter/2007/02/youthworker.htm
"학교는 헬라 말과 헬라 문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헬라 사람들이 고안한 제도라 말할 수 있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머리로 아는 것에 있다. 히브리식 앎이 순종을 통한 경험적 지식인 것과 대조되게 헬라식 앎은 지성적 작업을 통한 인지적 지식이다. 그런데도 교회학교 개념의 틀은 삶과 앎이 통합되는 히브리식 틀보다는 삶과 앎이 따로 노는 헬라식 학교교육의 틀을 따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에 비하여
히브리식 하브루타 교육은
질문하고 토론하라, 하브루타 교육법
https://happyedu.moe.go.kr/happy/bbs/selectHappy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216&nttId=3763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 토론, 논쟁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화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자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된다. 거기서 더 전문화되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되면 논쟁이 된다."
티베트 불교의 훈련법도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계의 수행자 : 다람살라의 수행자 8편
https://www.kbpf.org/134275/
"논쟁은 사유와 이해의 깊이를 훈련시키는 티베트만의 독특한 불교 공부법이다.
티베트 가수가 전통복 차림에 화사한 머플러를 두르고 나와 리듬에 맞춰 “스승님, 당신을 따라 부지런히 불법을 배우고 익혀 자비를 실천하렵니다”라는 가사의 유행곡을 부르면서부터다. 최신 유행곡에도 불법을 따르고 수호하려는 전통과 의지가 담겨 있을 줄이야, 티베트인들의 타고난 불심과 기상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티베트만의 독특한 불교 공부법인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일대일의 격렬한 토론과도 같은 형식을 취하는 논쟁은, 불법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속에서 논리적이고도 깊이 있는 사유와 이해의 힘을 키우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논쟁은 조금 특이하다. 이른바 단체전이라고 할까, 10여 명의 아니들이 한 팀을 이뤄 중앙에 앉아 있는 스승을 향해 답과 물음을 주고받는 식이다."
개신교회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세상과 다른 종교도 리더자와 교육 방식이 어떤지 둘러보며,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떤지?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T4T 에 대한 도전
T4T는 Training For Trainers.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 재혁명
http://baptistnews.co.kr/mobile/article.html?no=7591
간략히 위와 같이 정리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부흥 전략, 제자 훈련의 완성, 폭발적 셀 개척
T4T의 핵심 성공요인 중 하나입니다.
1단계부터 6단계까지의 내용이 ‘너무 짧고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본래의 내용에 이것저것 덧붙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T4T는 길어지고 복잡해집니다.
새신자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 복잡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요? 심지어 성숙한 성도들조차 그 내용을 어려워할 텐데 말입니다.
T4T 창안한 잉 카이 목사 “예수를 만났다면 지금 바로 예수를 전하라”
http://m.kmib.co.kr/view.asp?arcid=0011866115
이 주제로 현재 교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 재생산의 기능을, 전도의 잃어버린 문제를 가졌고
- 제자훈련에서의 신학화, 전문화 문제
- 아는 것은 많아도 실천적 문제
- 실제적으로 아는 것도 알지 못한 복잡화의 문제(헬라적인 이성으로는 풀수 없는 문제, 자가당착, 체험이 없는 말씀지식의 문제)
- 은혜를 받고도 풀어내지 못하거나 정체되어 섞음의 문제
- 성령의 능력과 권능이 부재한 문제
- 성령의 중생과 거듭남이 없어서 진리와 죄성에 양축의 사이에 자신을 찾지 못하는 문제
-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시인하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딱 맞도록.. 예수를 인정하는 자기 인식적 부재에 부딛혀 믿음을 나아가거나 바르게 서지 못하는 문제
- 제자화와 성숙, 믿음, 전도, 훈련, 리더, 성령,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 등의 중심된 기독교 주제들에 대해 총체적인 문제를 가짐.
우리는 위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아직 죄와 죄성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총체적인 문제를 가졌습니다.
4. 리더십
- 비즈니스 리더십을 필요합니다.
- 과장급 이상이 되니... 사회는 기본적으로 관리자... 관리 리더십을 요구합니다.
- 가정에서도 부모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 리더십. 리더십. 리더십 이 요구되는 사회와 시대입니다.
- 예수님의 리더십으로 인해서 서번트 리더십, 섬김 리더십 등이 대두가 되었습니다.
- 교회적으로 리더십 양성을 요구하는데... 교회의 직분을 세우는데 초점 맞춰있습니다.
- 총체적인 리더십 교육과 훈련을 도전 받고 있습니다.
- 목회자는 이런 상호적인 리더십에서 훈련 받고 있는가? 거의 부재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된 것에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5. 관계, 말씀, 상호 도전
관계적인 면으로 신앙의 친구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신앙의 성숙으로 좋은 관계를 목회적 교회적 관점으로는 어떻게 풀 것인가요?
그냥 셀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셀조직과 구역조직은 대형교회를 잘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인 부분이고
저희 청년들은 청년, 대학부-부서를 통해서 영적 아비나 마니또같은 것으로 일대일의 관계적인 시도들을 해 왔었습니다.
영적 아비로 상호 도전을 받는 훈련을 시도할 수 있는가요?
너무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세상의 직장 사수와 부사수 관계를 사회에서는 지속적이면서
계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사회는 말이 되고, 교회에서는 말이 않되는 구조는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밖에서 우리 안에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니라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선포한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20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영리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고, 마음에 불이 일었었는 과정인지요.
하지만, 현재에는 예수님을 모시는 것은 피상적인 부분이고, 확인되지 않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수나 영적 아비가 절대적으로 있어야 상호 체크와 확인이 됩니다.
메티인지적으로도 나 자신은 나를 잘 보지 못한다고 널리 공감이 되는 부분이겠습니다.
관계는 실제적 관계가 필요하며
말씀의 아는 깊이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선배라고 할지라도 아랫사람을 통해서 늘 말씀을 배울 수 있게 되는 오묘함이 있습니다.
상호 도전이 있지 아니하며, 그냥 단순히 먹고 마시는 - 친구관계... 밋밋한. 세상이 구하는 맛집탐방 친구로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맛집 탐방도 얼마나 첨예한지!!
극강의 맛과 자극을 찾아서 친구끼리 자기가 선택하고 추천한 곳이 맛있는 집을 찾았노라.
친구에게 추천과 설득과 노력과 정성을 아끼지 않고 - 맛집을 둘이서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런 광경이 이해가 되는지요?
먹방과 맛집에 길들여진 내 모습과 매스컴과 사회시류의 권능을 봅니다.
그런데 왜 신앙의 훈련과 정성은 이런 정성이 없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부자연스런 것일까요?
문제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이런 행동이 하나도 없으면서...
말씀 또한 읽지도 아니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깨닫게 되며, 말씀으로 자정적, 회복적, 성숙과 성장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된 요원한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에
광야와 터널을 준비하셔서 모든 세상 불빛을 꺼버리고
하나님께 집중되는 초강력 집중인생 코스로 인도하시는 성경의 훈련 코스를 보게 됩니다.
실로 하나님은 이해와 측량이 불가능하십니다.
그래도, 신경쓸 수 있는 부분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이 관계, 말씀, 상호 도전을 말이지요.
6. 성령 그리고 결어
하나님의 구원사
사랑, 창조, 타락, 사랑의 확증, 부활, 성령, 다시오심.
으로 축약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리하여 성령의 시대요.
은혜받을 시대요.
구원받을 만한 시대라고 성경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령을 은사로 풀지 말고,
좀더 자유롭고 일상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복음 교회에서 조용기 목사님이 주창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사모하고 모셔들이세요.
내주하시고 함께 동행하시고, 무엇을 하든 물어보십시요."
* 조용기 목사님의 과오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편만히 전하는 것은 또 별도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말 성령시대를 살아가는 영적 실제가 맞다고 생각해 봅니다.
많은 교회들이 아직 이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영성은 얼마나 막강한지요!
항상 우리를 압도해 옵니다.
연약한 저희들이 어떻게 담당할 수 있을까요?
주일 말씀으로 1주일을 살아가라는 주문을 목사님이 해 주십니다.
말씀... 잘 이해도 못하고, 실천하는 이 몇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믿음의 청년들은 대부분 월요일이 되면 백지가 된 상태로 세상과 맞닿들입니다.
백전 백패 -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는가요?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터널을 두어서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 하도록 이끄십니다.
아주 놀랍게도. 거의 모든 이들이 이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성령과의 관계를 가지고
이해를 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Living with JESUS today)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http://blog.daum.net/dnssosl/70
에서 말씀하는 것은 실제적인 성령님과의 관계로 나아가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나는 그 부분을 개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기도의 나눔과 훈련과 자립
** 형제는 **나누미- 정신지체 장애인을 돕는 봉사와 강남지역 노방전도를 주도한 제2**의 대학선교회 (선교회 라서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조직이 있습니다.) - 의 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육아와 학업 이후로는 영성적으로 바닥을 치면서 훈련 받았던 것을 잊혀진바 된 것 같습니다.
믿음 생활의 상호 체크와 격려와 관계중심이 대두되는 대목입니다.
아래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될 항목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기도를 나눈 것 자체가 관계적인 부분으로 접근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나눔, 그리고 서로 기도함은 목회적으로, 초대교회적으로 적용과 실천이 필요한 것을 현재에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현재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기도의 내용을 들어가지도 않고, 기도의 관계적인 부분과 기도생활에서 상호 체크와 실천을 물어보는 상황인 것입니다.
2. 헬라적 주입 설교, 히브리적 하브루타 나눔
주입식 교육에 한계는 이미 한국 공교육에서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방식과 초대교회가 취했던, 하브루타 토론식, 질문과 답문식의 교육적 나눔 방식이 설교에서도 도입되어야 한다고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세 참조 내용)
헬라적인 사고는 무엇이든 제단되지고 개념이 잡혀야 합니다.
히브리식 하브루타 교육과 사고 체계에서... 주님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명확한 정의를 하나님 아버지께 주권이 있으시고 구원사의 처음과 마침이 있을 것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구원을 어떻게 헬라식으로 우리는 공부하고 학습하고 있을까요?
신학적으로도 어려운 부분이지요.
간단하게, 교단마다 교리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안내하고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것이지요.
만약, 자살한 가정에 심방을 한다면... 그러한 정리된 것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 되겠습니다.
멀리갈 것 없이,
설교라는 형식과 커뮤니케이션 방법적으로...
이상하게 왜곡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시지는 않으셨거든요.
파디온선교회에서도 삶을 변화시키는 교회교육 주제로 올라온 글의 헬라식 교육 요지 부분에서.
http://www.paidion.org/bbs/news_letter/2007/02/youthworker.htm
"학교는 헬라 말과 헬라 문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헬라 사람들이 고안한 제도라 말할 수 있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머리로 아는 것에 있다. 히브리식 앎이 순종을 통한 경험적 지식인 것과 대조되게 헬라식 앎은 지성적 작업을 통한 인지적 지식이다. 그런데도 교회학교 개념의 틀은 삶과 앎이 통합되는 히브리식 틀보다는 삶과 앎이 따로 노는 헬라식 학교교육의 틀을 따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에 비하여
히브리식 하브루타 교육은
질문하고 토론하라, 하브루타 교육법
https://happyedu.moe.go.kr/happy/bbs/selectHappy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216&nttId=3763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 토론, 논쟁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화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자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된다. 거기서 더 전문화되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되면 논쟁이 된다."
티베트 불교의 훈련법도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계의 수행자 : 다람살라의 수행자 8편
https://www.kbpf.org/134275/
"논쟁은 사유와 이해의 깊이를 훈련시키는 티베트만의 독특한 불교 공부법이다.
티베트 가수가 전통복 차림에 화사한 머플러를 두르고 나와 리듬에 맞춰 “스승님, 당신을 따라 부지런히 불법을 배우고 익혀 자비를 실천하렵니다”라는 가사의 유행곡을 부르면서부터다. 최신 유행곡에도 불법을 따르고 수호하려는 전통과 의지가 담겨 있을 줄이야, 티베트인들의 타고난 불심과 기상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티베트만의 독특한 불교 공부법인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일대일의 격렬한 토론과도 같은 형식을 취하는 논쟁은, 불법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속에서 논리적이고도 깊이 있는 사유와 이해의 힘을 키우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논쟁은 조금 특이하다. 이른바 단체전이라고 할까, 10여 명의 아니들이 한 팀을 이뤄 중앙에 앉아 있는 스승을 향해 답과 물음을 주고받는 식이다."
개신교회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세상과 다른 종교도 리더자와 교육 방식이 어떤지 둘러보며,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떤지?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T4T 에 대한 도전
T4T는 Training For Trainers.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 재혁명
http://baptistnews.co.kr/mobile/article.html?no=7591
간략히 위와 같이 정리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부흥 전략, 제자 훈련의 완성, 폭발적 셀 개척
T4T의 핵심 성공요인 중 하나입니다.
1단계부터 6단계까지의 내용이 ‘너무 짧고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본래의 내용에 이것저것 덧붙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T4T는 길어지고 복잡해집니다.
새신자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 복잡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요? 심지어 성숙한 성도들조차 그 내용을 어려워할 텐데 말입니다.
T4T 창안한 잉 카이 목사 “예수를 만났다면 지금 바로 예수를 전하라”
http://m.kmib.co.kr/view.asp?arcid=0011866115
이 주제로 현재 교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 재생산의 기능을, 전도의 잃어버린 문제를 가졌고
- 제자훈련에서의 신학화, 전문화 문제
- 아는 것은 많아도 실천적 문제
- 실제적으로 아는 것도 알지 못한 복잡화의 문제(헬라적인 이성으로는 풀수 없는 문제, 자가당착, 체험이 없는 말씀지식의 문제)
- 은혜를 받고도 풀어내지 못하거나 정체되어 섞음의 문제
- 성령의 능력과 권능이 부재한 문제
- 성령의 중생과 거듭남이 없어서 진리와 죄성에 양축의 사이에 자신을 찾지 못하는 문제
-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시인하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딱 맞도록.. 예수를 인정하는 자기 인식적 부재에 부딛혀 믿음을 나아가거나 바르게 서지 못하는 문제
- 제자화와 성숙, 믿음, 전도, 훈련, 리더, 성령,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 등의 중심된 기독교 주제들에 대해 총체적인 문제를 가짐.
우리는 위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아직 죄와 죄성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총체적인 문제를 가졌습니다.
4. 리더십
- 비즈니스 리더십을 필요합니다.
- 과장급 이상이 되니... 사회는 기본적으로 관리자... 관리 리더십을 요구합니다.
- 가정에서도 부모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 리더십. 리더십. 리더십 이 요구되는 사회와 시대입니다.
- 예수님의 리더십으로 인해서 서번트 리더십, 섬김 리더십 등이 대두가 되었습니다.
- 교회적으로 리더십 양성을 요구하는데... 교회의 직분을 세우는데 초점 맞춰있습니다.
- 총체적인 리더십 교육과 훈련을 도전 받고 있습니다.
- 목회자는 이런 상호적인 리더십에서 훈련 받고 있는가? 거의 부재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된 것에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5. 관계, 말씀, 상호 도전
관계적인 면으로 신앙의 친구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신앙의 성숙으로 좋은 관계를 목회적 교회적 관점으로는 어떻게 풀 것인가요?
그냥 셀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셀조직과 구역조직은 대형교회를 잘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인 부분이고
저희 청년들은 청년, 대학부-부서를 통해서 영적 아비나 마니또같은 것으로 일대일의 관계적인 시도들을 해 왔었습니다.
영적 아비로 상호 도전을 받는 훈련을 시도할 수 있는가요?
너무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세상의 직장 사수와 부사수 관계를 사회에서는 지속적이면서
계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사회는 말이 되고, 교회에서는 말이 않되는 구조는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밖에서 우리 안에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니라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선포한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20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영리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고, 마음에 불이 일었었는 과정인지요.
하지만, 현재에는 예수님을 모시는 것은 피상적인 부분이고, 확인되지 않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수나 영적 아비가 절대적으로 있어야 상호 체크와 확인이 됩니다.
메티인지적으로도 나 자신은 나를 잘 보지 못한다고 널리 공감이 되는 부분이겠습니다.
관계는 실제적 관계가 필요하며
말씀의 아는 깊이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선배라고 할지라도 아랫사람을 통해서 늘 말씀을 배울 수 있게 되는 오묘함이 있습니다.
상호 도전이 있지 아니하며, 그냥 단순히 먹고 마시는 - 친구관계... 밋밋한. 세상이 구하는 맛집탐방 친구로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맛집 탐방도 얼마나 첨예한지!!
극강의 맛과 자극을 찾아서 친구끼리 자기가 선택하고 추천한 곳이 맛있는 집을 찾았노라.
친구에게 추천과 설득과 노력과 정성을 아끼지 않고 - 맛집을 둘이서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런 광경이 이해가 되는지요?
먹방과 맛집에 길들여진 내 모습과 매스컴과 사회시류의 권능을 봅니다.
그런데 왜 신앙의 훈련과 정성은 이런 정성이 없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부자연스런 것일까요?
문제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이런 행동이 하나도 없으면서...
말씀 또한 읽지도 아니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깨닫게 되며, 말씀으로 자정적, 회복적, 성숙과 성장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된 요원한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에
광야와 터널을 준비하셔서 모든 세상 불빛을 꺼버리고
하나님께 집중되는 초강력 집중인생 코스로 인도하시는 성경의 훈련 코스를 보게 됩니다.
실로 하나님은 이해와 측량이 불가능하십니다.
그래도, 신경쓸 수 있는 부분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이 관계, 말씀, 상호 도전을 말이지요.
6. 성령 그리고 결어
하나님의 구원사
사랑, 창조, 타락, 사랑의 확증, 부활, 성령, 다시오심.
으로 축약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리하여 성령의 시대요.
은혜받을 시대요.
구원받을 만한 시대라고 성경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령을 은사로 풀지 말고,
좀더 자유롭고 일상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복음 교회에서 조용기 목사님이 주창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사모하고 모셔들이세요.
내주하시고 함께 동행하시고, 무엇을 하든 물어보십시요."
* 조용기 목사님의 과오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편만히 전하는 것은 또 별도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말 성령시대를 살아가는 영적 실제가 맞다고 생각해 봅니다.
많은 교회들이 아직 이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영성은 얼마나 막강한지요!
항상 우리를 압도해 옵니다.
연약한 저희들이 어떻게 담당할 수 있을까요?
주일 말씀으로 1주일을 살아가라는 주문을 목사님이 해 주십니다.
말씀... 잘 이해도 못하고, 실천하는 이 몇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믿음의 청년들은 대부분 월요일이 되면 백지가 된 상태로 세상과 맞닿들입니다.
백전 백패 -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는가요?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터널을 두어서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 하도록 이끄십니다.
아주 놀랍게도. 거의 모든 이들이 이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성령과의 관계를 가지고
이해를 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Living with JESUS today)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http://blog.daum.net/dnssosl/70
에서 말씀하는 것은 실제적인 성령님과의 관계로 나아가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나는 그 부분을 개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 의견 1
한국교회는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성경암송, 하브루타, 테필린(가정에서 신앙계승)을 십자가 복음과 함께 선교지향적인 교회로 방향을 잡아갈 때,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 뒷받침 되지 않는 교회 성장, 해외선교는 세월과 함께 역사 속에서 한 때 유행했던 프로그램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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