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회복 - 킴벌리 조+칼 리터 201612

2019. 7. 24. 18:53선교 교회이야기

교회의 회복 - 킴벌리 조+칼 리터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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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시간
2. 빛의 절기 하누카
3. 히브리적 사고방식
4. 히브리적 성경 기초
5. 토라란 무엇인가?
6. 토라, 복음, 원뉴맨
7. 오중 사역
8. 기독교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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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기독교의 뿌리를 찾아서 결론

잠깐이지만 나누었던 내용을 요약하며, 강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초대교회의 구성원들은 대다수가 유대인들이었으며, 복음이 전파되면서 열방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커져갔다. 그렇기에 그들은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예수아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같은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A.D. 100년대 이후, 초대교회에 순교자들이 늘어가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져, 지하교회가 아닌,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교회들은, 서서히 로마의 통치아래로 넘어가면서 그리스-로마 철학과 그들이 추구하는 다원주의 같은 종교사상들이, 교회의 기본 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변형과 변질이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1세기 초대교회는 2세기 카톨릭을 형성했던 헬라적 기독교 세계관과는 분명히 그 근원과 형태가 다르다.

1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늘날 정통교리라 부르는 것들의 확립과 성공은 그들의 변질을 정당화 시켜주었고, 이것은 추후에 변질된 교회의 교리와 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참고로, 정통교리라고 불리우는 것 안에는 이교도를 넘어 컬트에 가까운 미신인, 디오니소스와 미트라 등의 더러운 요소들이 있고, 이것들은 기독교의 근간을 형성하여 정통기독교의 신관과 교리관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교와 미트라교에서 자행되어지는 살상과 살인이 카톨릭 내부에서 가능했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빌어 사용하였고, 죄 없는 사람을 화형 시키는 충격적인 행위를 마녀사냥이라며 죄책감은 커녕 불멸의 영혼을 구제하는 의로운 일이라 여겼다. 긍휼을 베푸시는 하늘 아버지는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한 기독교를 만들어 버렸다.

초대교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교에서 회심한 경우가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 열방에서 복음이 전해짐에 따라, 헬라 사람들이나, 그들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1세기 초만 하더라도, 회개하고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침례를 받고 성도가 되었는데, A.D. 155년경, 2세기 중반부터는 헬라사람 혹은 헬라 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변질된 기독교의 교리와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게 되어, 아무런 변화 없이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이때 헬라에 심취한 로마 교회는, 예슈아로 말미암지 않고도 기독교인이 되는 문을 열어주었고, 성경적인 진정한 회심이 아닌, 카톨릭이 만들어 놓은 신조와 교리, 그리고 교부(주교)의 권위 아래 참 성도의 기준이 세워지게 되었다. 더욱이 같은 시기에, 소아시아 교회와 로마교회가 부활절문제를 놓고 논쟁을 하게 되었는데, 세력이 컸던 로마교회의 주장이 옳다고 받아들여지고, 그것에 따르지 않는 소아시아 교회의 폴리캅은 출교를 당하게 된다.

이후부터, 모든 기득권은 완전하게 로마교회, 즉 변질된 기독교로 넘어갔다. 게다가, 로마는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기독교의 헬라화를 가속화 시켰다.

1. 진정한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을 정도로 성경의 가르침을 희석시켰다.
2. 신약성경의 가르침과도 전혀 동떨어진 철학적 개념을 제시하였다.

기독교가 변질된 8가지 질문.

1. 어떤 형태로 변형 되었나?
2. 변형의 규모가 어느 정도 였나?
3. 변형전에 형체는 무엇이고, 변경된 다음은 무엇인가?
4.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어떤 방식으로 변형시켰나?
5. 변형을 주도한 주체자들이 누구냐?
6. 변형된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 내에서 철학적 요소를 배제했는가?
7. 변질을 바로 잡아졌다면 언제 누가 어떻게 잡아졌는가?
8. 변질된 것을 성경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성경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성직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이 읽혀지기 시작한 것은 활자가 발명되고, 문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때부터, 즉 5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실제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도, 신학이 급격하게 발달했던 것도, 모두 활자가 발명된 이후부터 이다.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삶을 다하여 말씀을 연구하셨던 믿음의 선조들에 대해, 그들의 연구를 비하하고, 저들의 삶을 비난하고자 준비했던 강의가 아니다. 그러나, 그 500년보다 훨씬 이전에, 신학도, 다른 사상도, 예슈아를 향한 뜨거운 사랑 외에는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우리의 진짜 뿌리를 알게 하고자 준비하였다.

다시 돌아가야 할 진짜 교회는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교회이다.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사람들의 전통과 규례와 규범아래에, 오랜 시간 동안 교회가 성장하다 보니, 하나님의 참된 교회가 파묻혀버렸다. 지난 시간에 나누었지만, 하나님께서 처음에 지으셨던 교회는 바로 에덴동산이다. 그것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동산에서 동행하셨다. 그래서, 진짜 예배는 악기로 연주하는 시간이나, 목사님이 말씀을 선포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에게 에덴을 펼치시고, 친히 좌정하셔서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예배인 것이다.

주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그분의 복과 거룩을 베푸시는 시간을 정하시고, 그것에서 그분의 신부이자 교회인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자 예배의 처소를 만드셨다. 첫번째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서 공부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공부했던, 샤밧, 절기들, 하누카, 토라와 복음, 그리고 교회는 그냥 시간을 때우고, 새로운 지식을 채우기 위해 마련되었던 시간들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부로, 진정한 교회로, 진정한 원뉴맨 한 새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 우리가 바로 알고, 다시 회복해야 하는 귀한 것들이었다.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역시, 매 순간 주의 음성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 이후의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로, 주와 동행하며, 주의 음성에 순종하고, 더 나아가 주의 말씀과 예슈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으로, 주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는 Kingdom Builder(킹덤 빌더)의 삶을 살았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와 동행함으로 예배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그분의 에덴을 회복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삶에 주의 나라가 가져오고자 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삶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 나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