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4. 20:12ㆍ선교 교회이야기
김형국 IBA 2019 LF pre-round
한국 교회를 보며 총체적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수많은 정치가, upper class 대부분이 기독교인, 기득권층, 지도력을 발휘하는 자들이 기독교인.
한국 사회가 기독교 때문에 진보하는가? 답보하는가? 진보가 있긴 있는 것 같다. 40년간 살펴본걸로는 진보가 있긴 있는 것 같다. 너무 천천히.
왜 그런가? 원 가정, 교회에 문제가 있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
신학과 실천의 문제. 하나님 나라 - 예수님의 가장 큰 가르침. 중심사상.
Studying Theology
성경적 하나님 나라 신학
예수와 바울의 연결점
하나님 나라와 복음
하나님 나라와 성령론, 세상관, 성화론, 교회론
Doing Theology
어떤 그리스도인을 키울지
어던 교회를 세울지
어떤 역할을 세상 속에서 할지
어떤 목회를 할 지
한국 교회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전반적으로 무지하다.
한국 교회가 무엇을 믿는가? 요3:16!
그러나 이를 핵심 사상이라고 믿는다면 3장 전체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 세상을 살다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 죽고 천국에 간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믿고 가르치는 것이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예수가 가르쳤던 하나님 나라: 막 1:15.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고 믿어라!
깨진 세상. 심판하러 오신 메시야가 심판을 오히려 당하셨다.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는 세대. 그리고 다시 오실 때 심판이 있다.
already but not yet을 모르는 신학자는 없다. 그런데 과연 이 신학이 우리 사람을 지배하는가? 초대교회는 그랬다. 초대교회는 그래서 radical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통치권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 나라는 통치권에 있지 않고, 현재성에 있다.
그래서 노예를 해방하고, 남녀 차별을 철폐했다.
신약성경의 그리스도를 전부 메시야로 바꿔 읽어도 우리 신학이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개인화된., 내재화된, 마음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개인적, 현실도피적, 피안적 기독교가 되었다.
우리를 보세요. 하나님 살아계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지,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죽으면 달라져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다.
지금 삶에서 진짜를 보여주는 삶으로 세상이 달라진다.
이 두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면 이 세상에서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게 된다. 그렇게 훈련받는 공동체가 교회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첫번째 변화가 공동체를 찾는 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 나라에서 살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책임지는 관계 accountable relationship을 만들어가게 된다.
오해 하지 말자, 십자가는 소중하다. 그러나 십자가만 이야기 하는 것이 문제다. 단순히 우리 죄를 사하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문을 활짝 열고 그 속에 들어가게 하셨다. 살게 하셨다. 그래서 모두가 제사장이 되었다.
"전 신자의 제사장설" all believers' priest. (만인 제사장설). 교회는 제사장 신분도 안 갈켜주고, 역량도 안 갈켜준다. 그저 교회를 이끄는 교인, 성실한 봉사자 정도의 역량만 키우고 가르친다.
교인은 철저히 개인화 되고, 피안적 존재로 변질되었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면 교회가 바뀌게 되어 있다.
1.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면, 성도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 교회 전체가 사랑이다. "교회 안의 거짓말"(김형국). "신학교 안의 거짓말"(김형국)
2. 정의가 실현된다. 교회 안에 정의가 있나? 버젓이 도둑질하는데 사람들이 모인다. 은혜만 있으면 다 된다고 모인다. 그런 기독교 속에서 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내겠는가?
나들목 교회, 다섯개 교회 분교가 계속 뉴스에 나온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병든 교회 하나가 낫지 병든 교회 다섯개로 나눠지면 뭐가 되나?
깨진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메시아가 하셨던 일을 하는 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할 일이다. 우리의 삶터와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내는가? 이것이 우리의 관심. 교회에서 제대로 하나님 나라 경험을 못해본 사람들이 어떻게 삶터와 일터에서 이를 만들어갈까? 그러니 교회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나가서 두드려 맞고 다시 공동체에 와서 다시 회복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도록 해줘야 한다. 세상에서 안 싸우니까 힘이 남아서, 교회 안에서 싸우는 거다. 세상에서 싸워 힘을 잃고, 교회에서는 싸울 힘이 없어야 한다.
자본주의와 비즈니스 문화의 부정적 요소
자본중심: 하나님을 대체
개인주의: 공동체를 대체
물질적 성공주의: 참된 성공을 대체
고객서비스: 성도와 헌신, 사랑의 공동체 대체
승리주의: 그리스도 인의 미덕(섬김, 희생, 인내, 과정과 동기 중시) 을 대체
자본주의가 어떤지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를 집어 삼킬 것이다.
긍정적 측면: 통계, 다양한 분석적 툴 사용
실증적 분석
전략적 사고
선교적 적용
문화 명령 이행
하나님 나라의 삶을 어떻게 비지니스에 담을까?
1. 사업의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 돈도 번다. 비지니스를 선교의 수단으로 삼는다?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사회적 필요를 어떻게 채우는가? 어떻게 세상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가?
2. 자신의 비즈니스를 이해해야 한다.
사업에서 악한 부분을 알아야 한다. 사업에는 회색 지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곳에 곧 악한 영역으로 바뀐다. 악과 싸워야 한다.
3. 산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투자자/ 소유자 > 매니저 > 생산자 > 소비자
투자자: 돈을 넣었다 빼었다를 반복하는 것이 세상 투자자. 회사의 방향과 가치를 정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윤의 적절한 배분(경영진이 하는 일). 이 결정의 방향을 정하는 자들이 투자자. 교회 조차도 이윤이 적절히 배분되지 않는다. 그런 걸 본 사람들이 어디서 이런 모델을 만들까? 이윤을 어떻게 나눌건가? 이런 고민하는 모임이 많아야 한다.
경영자: 지상 최대 목적 - 월급 제때 주는 것.
직원 30명 먹여 살리는 것 아니고, 그에 딸린 가족까지 먹여 살리는 것.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가치관으로 이야기 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이야기 하자. BM(Business Mission) 이야기 전에 Business 똑바로 하자.
인사: 발굴 육성 평가 보상
투자자& 경영자 일 경우 이 둘을 분리시켜 생각해야 한다.
생산자: 하나님 명령에 거스린다면 막아야 한다. 자연을 오염시키거나 망가뜨린다면 대항하다가 쫓겨나야 한다.
정림건축: 건축 안돼! 언능 정리하고 다른데서 돈벌어! 친구들의 조언. 그러나,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곳. 그래서 계속 필요한 일. 회사 가서 하루만 일하는데도 너무 피곤하다. 그러나 계속해야 할 일이다.
건축업은 악한 영역이 아주 많다. 분명치 못한 돈의 영역이 많다. 새 대통령이 토목 공사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정림건축: 사람 신뢰 함께 탁월
대체 복음은 언제 전하나?
기업활동 외 시간에 전해야 한다. 복음은 힘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진실함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힘으로 전달된 복음은 항상 문제를 일으켰다. 제국주의적 복음 전파. 힘에 굴복한 것이지 사랑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원일 때는 복음전파가 쉬웠다. 상급자가 되자 권력이 더하여져 복음 전파가 안된다. 신우회 만들었다. 너희가 전해라! 열다섯 팀이 복음을 1:1로 전했고 다섯명이 회심. "회사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될 줄 몰랐다"
어떤 강요도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복음이 전해지도록 해라.
성도들이 제사장 되어야 한다. 그들이 양육하고, 그들이 복음 전해야 한다.
나의 원가정은 어떤가? 지금 속한 교회는 어떤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의 공동체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악한 자와의 싸움에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날 수 있나? 내가 먼저, 내 교회에서 이 삶을 살아야 한다. 여기서 익힌 것을 적용해야 한다. 성공 사례가 아니라 실패 사례를 이야기 하고 다시 싸우러 나가는 곳이 이 곳이어야 한다.
우리가 원 가정이 되면, 우리를 보고 배우는 자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것이다. 후배들이 우리의 어깨에 올라서게 된다. 그게 기독교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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