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30. 00:40ㆍ로뎀나무/첫번째
예수의 탄생과 함께 새 생명의 탄생을 알려 드립니다. (2004.12.25)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이 유대인 가운데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하나님으로 자처하며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줄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전부터 항상 존재해 왔다고 했습니다. 또 마지막 날 다시 와서 세상을 심판 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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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수가 바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했으며, 그들의 죄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양 행동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정말 하나님일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며 그의 사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존재가 이런 말을 했다면, 역사에 등장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 우스꽝스럽고 자만에 찬 짓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이것은 이상하고도 의미심장한 사실인데)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복음서를 읽을 때 그에게서 우스꽝스럽거나 자만심에 차 있다는 인상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편견 없이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요. 그리스도는 스스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고(마태복음 11장 29절), 우리는 그의 말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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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려운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람은 그 자신의 주장대로 하나님이었거나(따라서 지금도 하나님이거나), 아니면 미치광이 내지는 그보다 더 못한 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미치광이나 악마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정말 이상하고 경악스러우며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긴 해도, 그가 하나님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적에게 점령당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무엇을 하려고 세상에 온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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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 죽임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었고, 그가 죽음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힘을 잃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어야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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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이 빠져 있는 '곤경'이란 어떤 것일까요? 스스로 독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한 것, 스스로 자기의 주인인 양 행세하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인간은 개선의 필요가 있는 불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라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반역자입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면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그 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 왔음을 깨닫고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 이것이 이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렇게 항복하는 과정을 그리스도인들은 '회개'라고 부릅니다. 회개는 장난 삼아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히 굴욕을 감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수천 년 간 익혀 온 자기 만족과 자기 의지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 일종의 죽음을 겪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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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회개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주는 그 악함이 동시에 우리를 회개할 수 없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면 회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체 어떤 뜻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은 이를테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 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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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죽음을 나누어 가질 때에만 우리는 회개라는 죽음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지 않는 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나누어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죽으실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가 우리의 빚을 갚으셨으며 그로서는 전혀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을 우리를 위해 겪으셨다는 말에 담긴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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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서 실제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몸에 자연적인 생명이 있는 한 그 생명은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몸은 죽은 몸과 달리 상처를 입었을 때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몸이 살아 있다는 것은 절대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어느 한도까지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란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 몇 번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매번 그를 회복시키며 그리스도처럼 일종의 자발적인 죽음을 반복할 수 있게(어느 정도까지는) 해주므로-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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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이거나 도덕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거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말은 단지 머리 속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있다거나 그를 본받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실제로 그들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전체 무리는 그리스도가 활동하는 물리적 유기체-우리가 그의 몸의 세포이자 손가락이자 근육을 이루고 있는-입니다.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에서 발췌 |
기쁜 성탄절에 저는 또 하나의 새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 하고자, 루이스 아저씨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성탄절에도......
예수의 탄생과 삶과 죽음과 복음의 메시지가 널리 널리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가지 예수 그리스도에 탄생의 생명력은 지금도 우리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을 !!
거듭, 말씀 드리고자 이 글을 띄워드립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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