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7. 08:21ㆍrotemtree/다섯번째
정죄를 말하다. (정죄의 방향, 정죄의 주체에 대해서)
정죄: 죄가 있다고 판정하여 판단하거나 유죄를 선고하는 행위.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19
This is the verdict: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but men loved darkness instead of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John 3:19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20~21
Everyone who does evil hates the light, and will not come into the light for fear that his deeds will be exposed. But whoever lives by the truth comes in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seen plainly that what he has done has been done through God."
John 3:20~21
빛이 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둠이므로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는 정죄로 예수님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정죄의 방향과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어두움을 더 사랑하여서 빛을 정죄한 것이 아니었나요?
그러나,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를 막지도 않았습니다.
예수 빛으로 나아오는 것, 예수 구원의 진리를 따르는 것이 빛으로 나아오는 것이고.
이 단순히 믿고 나아오는 행위가 있습니다. 이 행위를 하나님 안에서 나타나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로 열려진 것이라고 의미를 되세겨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안에서 나타낸다는 경이로움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큰 댓가를 치뤄낸 것이 되고요.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은 앞 구절이 더 유명한 구절 뒤에 배치되어 있던 것을 오늘 더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3:16~18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John 3:16~18
정죄에 대한 것을 사람들은 더 많이 신경쓰고, 살펴보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일어난 것을 더 신경쓰고 살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사...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내어 주신 이처럼 사랑
- 사람이 살아가는 지구와 우주 환경을 주신 이처럼 사랑
- 태초부터 예수 그리스도 말씀으로 창조된 피조 세계
- 그리고 피조 세계의 원래 빛이 되신 예수님.
하나님 아들이며, 하나님 자신이 되신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고 계획 하셨습니다.
이 아들을 보낸 계획은 -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계약서 첫 구절과 두번째 구절로 영생을 주시고, 심판보다 구원에 중심을 둔 기쁨의 계약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심판을 받는 것도 사실은 예수를 거절하므로 인해서 스스로 심판을 받는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깨닫게 되고요.
정죄를 말하는 기준이 필요하게 됩니다.
정의도 기준을 통해서 이야기하게 되지요.
우리들은 사실 그 기준을 정하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곧 세계의 이야기는 그 분의 역사 안에서 일부분이 되어질 것인데요.
이 빛과 어둠. 심판과 구원에 나눠지는 기준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완전 구분되어서-정죄하는 참소를 하는 것은 마귀의 일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은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특히, 어둠의 기준으로 빛을 보고, 빛을 반대하고 거부하는.
빛을 정죄하는 일이 현재 우리 삶의 모습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죄: 죄가 있다고 판정하여 판단하거나 유죄를 선고하는 행위.
오늘 말씀에서 누가 누구를 정죄하는지? 꺼꾸로 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어둠이 빛을 정죄하여서 빛이 죽임을 당했다.)
정죄라는 행위를 진짜 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다시 보게 되었다.
(어둠이 정죄를 하고 있는 주체를 가지고 있다니!!! 정죄하는 자 - 마귀.)
지금 우리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주체와 방향이 잘 세워가고 있는지?
정죄라는 단어로부터 찬찬히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풀~~ 스토리 - 전체 이야기의 맥은 비롯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
잘못되어서 구원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셨다.
하나님 안에서 나타내시도록 구성이 되어있는 완성된 이야기의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들의 이야기에 맥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소원한다.
참고자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1~5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men.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but the darkness has not understood it.
John 1:1~5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요한계시록 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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