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9. 12:23ㆍ선교 교회이야기/CPM
여러가지 한국선교 역사와 맥락과 흐름을 잘 설명해 준 기사이다.
출처 : http://missiontimes.co.kr/?p=2668
[선교쟁점]미전도종족과 전문인선교
최바울선교사(인터콥)
1. 들어가는 말
1970년대 말까지는 한국교회 내에 선교운동은 감지되지 않았다. KIM(Korea International Mission) 조동진 목사 홀로 선교의 당위성을 제기하고 있었다. 당시 KIM을 통해 한국교회에 흘러 들어온 선교정보는 주로 ‘부족 선교(tribal mission)’ 가 주축을 이루었다. 조동진 목사는 “제3세계는 제3세계가 선교해야 한다!”고 기치를 높였으나 선교전략은 다분히 타문화권 커뮤니케이션으로 대변되는 서구선교의 연장선에 있었다. 서구교회의 선교접근 전략과 비서구교회의 선교접근 전략이 달라야 한다. 그러나 그는 서구에서 아세아로의 선교리더십 이양을 예견했으나 전략적 패러다임의 한계는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1980년 CCC 김준곤목사가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함께 개최한 ‘여의도세계복음화대회(이하 ‘여의도 대회’)’는 기독 청년대학생들 사이에 세계선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집회 마지막에 김준곤목사의 선교헌신자 초청calling으로 약 5만 명의 청년 대학생들이 일어나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했다. 그러나 ‘여의도 헌신자들’ 대부분은 헌신을 결심했을 뿐 선교사로 나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초청calling은 했으나 그들이 선교사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후속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헌신자들은 대부분 평신도 기독 청년들이었는데 당시 한국교회의 해외선교는 목회자들의 사역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는 강조되었으나 선교운동을 가능케 하는 선교전략의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의도대회는 한국교회 기독청년들에게 희미하게나마 선교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머지않아 일어날 한국교회 청년대학생 선교운동과 이어지는 평신도 전문인선교에 대한 예언적 암시와 같았다.
2. 전문인선교협의회(KAT)
1993년에 전문인선교 국제네트워크와 교감하던 전동주목사의 제안으로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KAT)가 설립되었고 초대 회장으로 한정국선교사가 선임되었다. 전문인선교를 위한 연합운동은 매우 시기 적절한 것으로 당시 20여개의 주요 선교단체들이 참여하였으며 한국교회 미전도종족 선교의 전략적 선교로서 전문인선교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교단선교부는 여전히 전문인선교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2001년 911사태 이후 세계선교환경이 악화되면서 합동 GMS가 LMTC 평신도선교훈련을 통해 간접적으로 평신도전문인선교 운동을 교단 내에 확산시켜나갔으며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이후 고신교단 선교부 김한중 본부장이 교단 내 전문인선교를 체계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아쉽게도 911사태 이후 급증하는 전문인선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KAT의 활동은 내부 문제로 인해 현저히 약화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이후는 사실상 소멸되다시피 했다. 한국교회의 전략적 선교의 시급한 요청에도 KAT는 재가동되지 못했으며 아프간피랍사건 이후 한국교회 전방개척선교는 전략적 담론 부족으로 스스로 위기를 맞아 하게 되었다.
아러한 상황은 한국 최대교단 선교부 GMS에도 나타났다. 강승삼목사를 이어서 2천 년대 중반에 강대흥 선교사가 합동교단 선교부(GMS) 사역 책임자가 되면서 사역기조는 전방선교에서 더 나아가 ‘최전방선교’로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는 미전도종족 선교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으로 전방개척선교가 크게 도전을 받으면서 이후 합동 GMS선교부의 정책기조는 적지 않게 흔들렸고 지금까지 한국선교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선교는 수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으나 전략성과 사역적 성숙에 있어서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전방개척선교저널>(KJFM)을 통해서 전방개척선교를 논하지만 한국교회 전략적 선교운동으로는 충분히 파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 미전도종족과 전문인선교
이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은 확산되고 있으나, 그럼에도 정작 미전도종족 선교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인 개념이 형성되고 있지 않아서 1990년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대개의 경우 교단선교부나 선교단체의 정책 혹은 사역전략은 여전히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미전도 종족 전방개척 선교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루이스 부시가 도출해 낸 전략 개념이 10/40 창 선교운동이다. 인구 면에서 전방개척선교 지역의 90% 이상이 10/40 창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부시의 10/40 창 개념은 비록 다소 도식화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성경적 논리에 근거를 둔 미전도 종족 선교의 개념을 이 시대의 정황을 고려하여 매우 전략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세계선교 역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창window 개념은 이후 아랍창, 페르시아창 등 보다 구체적인 지문화(geocultural) 단위의 블록 또는 cluster로 발전하여 적용되었다. 또한 KWMA에서는 ‘한국교회 최우선 선교지역’ 개념을 설정하고 미전도종족에 대한 전략적 선교를 시도하였다.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으로서 10/40 창 선교운동이 상징하는 바는 이 지역이 선교접근을 제한하는 소위 창의적 접근지역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선교형태가 불가능하거나 효율적이지 못하다. 예외적인 지역이나 경우가 있겠으나 대개 사역 형태 면에서 전문인선교(tentmaker mission)가 가장 효율적이고 전략적이다.
1) 전문인선교의 전략적 개념
‘전문인선교사(Tentmaker)’는 ‘천막 만드는 자’라는 뜻으로 이 용어는 사도행전 18장 3절 등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주님의 제자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소아시아 등지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할 당시에, 천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며 선교사역을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안디옥교회 파송 선교사 바울의 초기 직업 ‘텐트메이커(Tentmaker)’란 말이 선교용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600년대 이후 2/3세계의 반 서구 저항운동으로 말미암아 이 지역에서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사역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는 ‘상황화 전략’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교회 선교 전략가들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게 된 선교 전략적 발상은 다음과 같다:: “이렇듯 서구교회의 정규 선교사들이 제3세계 선교지에서 밀려나고 선교지 침투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역에 대한 선교를 우리는 무작정 보류 혹은 포기해야만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정규 선교사가 아닌 비정규 선교사들, 즉 모든 평신도들이 비록 교회로부터 정식 파송을 받지 않았더라도, 만일 그가 선교 목적으로 자발적인 결심으로 갔던, 아니면 사업 혹은 업무로 갔던 간에 이들이 체류하는 곳이 선교지일 경우 선교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케 해야 한다. 바울을 보라. 그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선교를 하지 않았는가? 정규 선교사의 수보다 수십 배 많은 해외 거주 평신도들이 선교에 참여한다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이 되겠는가?”
(1) 전문인선교사와 자비량 선교사
이와 같이 서구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전문인선교사(Tentmaker)’ 용어와 그 용어가 가지고 있는 선교 전략적 개념이 1980년도 후반에 우리나라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용어가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한국교회의 선교 전략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서구에서 발행된 선교 도서를 번역하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서구교회의 주요 선교 양태 중 하나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선교의 연륜이 짧은 한국교회에서는 당시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한국 선교계에서 처음에는 ‘텐트메이커(Tentmaker)’란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필자가 1980년대 말에 ‘전문인선교사’로 용어를 바꾸어 사용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기에는 텐트메이커와 전문인선교 등 다수의 용어들이 혼재하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문인선교에 대하여 선교정책 혹은 선교전략적 차원에서 충분한 연구와 평가가 뒤따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해되기 쉽게 ‘자비량 선교사’ 혹은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로 이해하였고 또 종종 그렇게 번역하여 보급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서구교회가 인식하고 있는 이 용어의 개념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국내에서 ‘텐트메이커/전문인선교사’의 개념은 용어의 번역 덕분에 비록 일부지만 자비량, 즉 ‘선교비 지원을 받지 않는 자’ 라는 기본 개념과 이에 덧붙여서 평신도, 즉 정규 교역자 선교사(목사나 전도사)가 아닌 ‘비전문가(amateur) 선교사’ 란 개념으로 인식되기까지 하였다. 당시에 ‘전문인선교’를 이와 같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문인선교사’가 세계선교계에서 급격히 새로운 전략으로 부상하게 된 근본 이유, 즉 갈수록 늘어만 가는 선교제한 국가들(정식 선교사 거부 국가: 1974년 32개국, 1989년 77개국)을 복음화하려는 선교전략적 요청에 의한 것임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2) 패트릭 라이의 전문인선교사 개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한국교회의 전문인선교 경험이 미약하나마 축적되어 가면서 한국교회의 상황에 맞는 전문인선교사의 개념이 선교전략적 안목에서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에서 전문인선교사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여러 서구선교 연구가들의 이론 중에서 당시 선교 전략적인 안목에서 가장 잘 정리되었다고 생각되었던, 1990년대 초 패트릭 라이가 제시한 ‘텐트메이커’ 선교사 유형과 개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패트릭 라이는 전문인선교사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T1: 직업적인 동기로 해외에 근무하게 된 사람으로서 선교 훈련을 받지 않은 자. (2) T2: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 갈 수 없는 곳에 선교의 목적으로 입국하여 직업을 가지고 자비량해서 사역하지만 시간적인 면에서 사역 보다는 직장 일에 더 비중을 두고 일하는 자. (3) T3: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선교지에 들어가서 사업 등을 통해 자비량하며 사역하는 자. 그러나 사업(회사)에 종사하면서도, 자비량을 위해서 사업에 얽매이지 않고 사역에 최우선을 두는 자. (4) T4: 전통적인 선교사 입국이 불가능한 지역에 학생 등의 신분으로 사역하는 선교사. 이러한 선교사는 자비량하지 못하고 교회의 도움을 받는다. 위와 같은 유형 중에서 T2, T3, T4는 선교단체와 연관을 가지고 사역하며, 이 중에서 T3와 T4는 선교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지에서의 신분과 본래의 신분이 다른 두 개의 모자를 쓰고 있는 사역자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Part Time(시간제) 사역자가 아니라 전임 사역자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패트릭 라이가 전통적 선교사 입국이 제한되어 있는 창의적 접근지역을 염두에 둔 선교전략적인 개념을 가지고 텐트메이커/전문인선교사를 정의하고 분류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크리스 윌슨은 전문인선교사의 유형을 열두 가지로 구분하며 전문인선교를 자비량에 비중을 두고, 모든 크리스천의 선교 동원화라는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어떠한 목적이 있든 불문하고,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크리스천은 전문인선교사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비량선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윌슨은 과도하게 폭넓은 개념을 제시했으며 이는 당시 한국교회에 상황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지 않았다. 극복해야할 여러 과제가 내재되어 있음에 불구하고, 지금은 한국교회에서 오히려 자비량선교사를 포함하는 전문인선교사 개념으로의 전환이 적극 논의될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
“새로운 필요, 전문인선교사!”라고 할 때는 이러한 지역에 전통적인 선교사가 아니라 전문인선교사가 들어가서 사역할 수 있다는 선교정책 및 전략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목회자이건 아니건 간에 이러한 제한지역의 사역을 위해서는 우리가 전문인선교사 형태로 사역을 해야 한다는 선교전략적인 필요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문인선교가 제한지역에 대한 선교전략적 필요를 넘어서 모든 선교지역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교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이는 매우 바람직한 변화로 평가된다.
한편 상황화 전략 및 선교전략적 차원에서 전문인선교사란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본국 교회로부터 물질 공급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파송교회로부터 물질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역지 상황과 물질의 필요에 따른 문제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패트릭 라이의 제 3유형과 제 4유형의 구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KWMA는 2006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한국교회 선교비전 Target 2030을 선포하면서 “10만 정병 선교사, 100만 자비량선교사”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종말론적 선교기조를 선포하면서 자비량선교를 포함하는 선교운동을 주창한 것으로 매우 의미가 있다.
한편 ‘전문인선교사’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목회자 선교사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평신도 선교사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목회자 출신이나 평신도 출신 모두가 다 선교전략적인 필요에 따라 전문인선교사가 되어 사역하는 것이다.
선교 전략적인 측면에서 전문인선교가 선교제한지역 혹은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 더욱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선교제한 지역에서만 전문인선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 입국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지역에서도 팀사역이나 프로젝트 사역에서 전문인선교사가 매우 효과적으로 사역해 왔으며, 이러한 필요는 계속 증대되고 있다.
또한 전문인선교사라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의사, 교수, 기술자 등 라이센스를 가진 특수 전문인에 국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Tentmaker(전문인선교사)’를 말할 때, 직업 혹은 직능을 가진 선교사라는 개념으로 말하는 것이지, 사용한 용어가 전문인이라고 해서 의사, 전문 기술자 등과 같이 그 직업이 고도의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고도의 직업적 전문성이 선교 현지에서 용이하게 사용될 수는 있으나, 반드시 이러한 면에 국한해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문인선교를 마치 선교지 침투를 위한 위장 전략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어느 사역자가 선교지에 침투하기 위해서 어떤 직업을 위장했다면, 그의 선교지에서의 사역은 극히 비효율적인 것이 될 것이며, 야누스적인 그의 정체성은 더 큰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다. 전문인선교는 통전적 및 전인적 선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선교현장에서 전문인선교가 단순히 프로젝트를 통한 비즈니스나 사회사업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전문인선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제자영육과 교회개척이다. 따라서 현지 토착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전문인선교사는 직능적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사역적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말씀사역은 물론이고 문서사역, 예배사역, 어린이사역, 공동체사역, 캠퍼스사역, 중보기도사역, 신학적 전문성 등 다양한 사역 형태 중에서 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사역적 전문성을 갖출 때 교회개척 사역은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2) 전문인선교와 사역프로젝트
전방개척 선교에 있어서 선교사로 현지에서 의사, 사업가, 교수, 연구원, 유학생, 기술자, 사회개발요원, 해외파견원 등 다양한 신분으로 전문인 선교를 수행하게 된다. 현지에서 신분을 확보하고 현지 기관이나 법인체, 회사 등에 소속되어 사역하는 방법이 있고 현지 사회에 개발 ? 교육 ? 의료 ? 기업 등의 분야를 지원하고 도울 수 있는 전략적 장기 사역 프로젝트를 가지고 사역하는 방법도 있다. 프로젝트는 대개 현지 교회와 사회를 돕는 중장기 프로젝트여야 한다. 선교대상 국가에 따라 비즈니스사역도 매우 좋은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
프로젝트 선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지 콘텍스트를 심층 고려하여 주도면밀히 검토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사역자 개인이 추진하기 보다는 파송단체 혹은 파송교회가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프로젝트가 추진될 경우 다수의 사역자가 함께 입국하여 팀으로 사역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연구소, 특수학교, 고아원, 농장 경영, 특정 비즈니스, 문화사업, 개발사업 등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에 대한 기여도를 높일 경우 전인적 선교(holistic mission)가 되어 장기적으로 현지사역에 매우 효과적이고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사역프로젝트는 심도 있는 현지연구를 통해서 그 지역의 복음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 추진하는 해외 선교 프로젝트의 경우 대개 선교사나 국내 본부에서 현지 정황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여 장기적으로 현지 선교에 유익을 주기보다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한 프로젝트가 선교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단순한 사업으로 끝나버리는 경우 또한 흔히 볼 수 있었다.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지역 전문인선교는 현지의 사회발전과 개혁에 기여하는 전인적 선교와 더불어 일대일 제자양육을 통해서 현지 교회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들의 은사를 전략적으로 시너지화하여 모든 역량이 여기에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5. 한국교회 전문인선교 평가
1) 전문인선교와 평신도선교
지난 20년 동안 한국교회의 평신도 전문인 선교운동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는 계속 급증하고 있다. 현재 약 3만 명의 한국인 선교사들 가운데 평신도 선교사가 5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진보이다. 1990년에 한국인 선교사 1,500여 명 가운데 평신도 선교사는 2-3%에 지나지 않았다. 1980년대는 물론이고 1990년대 초반에도 평신도선교사에 대한 저항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평신도 전문인 선교운동이 활성화된 데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 소속 여러 전문인 선교단체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 초대 회장을 지낸 한정국 선교사의 헌신적 리더십과 만인제사장론을 만인선교사론으로 담대히 연동시킨 침례신학대 이현모 교수와 GPI 김태연 원장의 신학적 공로도 적지 않았다. 더불어 수백 명의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를 파송한 ‘온누리교회’와 부산 ‘수영로교회’ 등 지역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교회는 한국교회의 전통을 과감히 뛰어 넘어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을 대거 파송한 것이다. 온누리교회의 경우 파송선교사의 70% 이상이 평신도 전문인선교사이다.
최근에는 평신도 선교운동이 발전하여 시니어(실버) 선교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전방 개척지역 대부분이 기독교선교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별 및 연령별, 그리고 직능 및 다양한 사역적 은사가 동원된 팀사역은 21세기 세계선교 현장에서 갈수록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다양한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의 선교참여는 계속 적극적으로 격려되고 제도적으로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2) 전문인선교와 NGO선교
1990년대에 들어 ‘선교한국’의 청년대학생 선교운동과 ‘미전도 종족입양운동본부’의 출범, 전방개척선교와 전문인선교운동은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선교부흥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와 같은 폭발적인 선교 부흥의 열기 가운데 수많은 선교단체들이 새롭게 출범하였다. 2000년대는 9.11사태의 영향 등으로 선교단체는 물론이고 교단선교부도 전문인선교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전환을 추고해 왔다. 비즈니스선교, IT선교, 스포츠선교, 인터넷선교, 문화예술공연선교, 농업공동체선교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들이 해외선교 분야로 동원되어 갔다.
9.11 사태이후 세계선교환경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 지역에서 선교사 입국이 점차 더 제한을 받아 왔다. 또한 현지 국가와 주민들로부터 기독교선교에 대한 저항의식도 점증해 왔다. 이러한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고안된 것이 통전적 선교로써 NGO 선교이다. 이렇듯 복음사역과 사회봉사를 병행하는 NGO선교는 단순히 입국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에게 생명의 복음뿐만 아니라 동시에 육체적 및 사회적 필요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전인격적이고 더 온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여 한국인 선교사들이 전방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등 비교적 복음화율이 높은 지역에서도 NGO사역을 강화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갈수록 증가해 왔다.
그러나 NGO 선교의 허와 실이 있다. 영혼구원과 교회개척은 뒤로하고 프로젝트만 추진하는 NGO 선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NGO 사역이나 교육 사역 등에 있어서 이를 UN이나 국가의 원조 지원 활동과 차별화해야 한다. 영혼 구원은 팽개치고 UNESCO나 정부들이 하는 것과 동일한 봉사만 하고 있다면 복음 전도자로서의 선교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일은 UN, 정부 및 비정부기구들에게 맡겨야 한다. 파송교회에서 전도와 교회개척을 목적으로 파송된 선교사가 NGO봉사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복음사역자의 경우 선교지에서의 NGO사역은 하나의 거룩한 도구이지 목적일 수는 없다. 문화명령과 선교명령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이다. 신약시대에 문화명령은 선교명령에 종속되어야 한다. 파송교회가 선교명령을 위해 선교사를 파송했다면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정직한 선교사일 것이다. 요즈음 보면 ‘한 손에 복음, 한 손에 사랑’이라는 NGO 선교의 기조가 점점 ‘양손에 사랑’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같다. 기독 NGO와 전략적 접근으로써의 선교단체 NGO사역은 구별되어야 한다. 한국 선교단체 ? 선교부는 교회개척을 위한 NGO 사역으로 사역정책과 전략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구제봉사, 교육사업과 NGO 프로젝트를 만들어 사역의 외형은 우렁찬데, 구원받은 현지인은 별로 없고 전도자나 목회자 등 영적 지도자는 양성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선교사가 많은 물질을 투입하여 프로젝트를 만들어 놓고 자기 성을 쌓고 군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어떤 사역자는 아예 떡을 복음으로 제시하며 이것이 복음사역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사단은 떡을 강조하며 굶주린 예수님께 접근했다.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못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나 육은 무익하다. 예수님은 마지막 지상명령을 주시면서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다. 천국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음부의 권세를 제어하는 권세를 교회에 주셨다. 복지단체나 학교에 주지 않으셨다. 교회가 개척되어야 한다. 교회가 개척되어야 한 민족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제1차 로잔대회에서 복음과 사회봉사가 통합되어야 한다는 ‘온전한 복음’이 천명 되었으나 이후 세계교회는 갈수록 세속화되어 갔고 반대로 유사종교 이슬람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세계교회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사회봉사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개척이 없는 사회봉사는 세속 NGO, KOICA 및 UN 기구들도 잘하고 있다.
문화명령(cultural mandate)과 선교명령(spiritual mandate)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해야 하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모두가 함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행되어야 할 명령들임을 상기하면서 문화명령의 성실한 이행을 통한 직능적 전문성과 사역적 전문성을 가지고 선교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충성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복음으로 그 민족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복음이 능력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 모두에게 복음이 능력이다. 야만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선교사를 위협한다고 복음을 뒷전으로 해서는 안 된다. 온전한 복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파송교회와 선교사는 ‘온전한 복음’이 아니라 ‘영원한 복음’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계 14:6). 모든 민족에 복음이 증거될 때 역사는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전문인선교와 프로젝트 재정의 투명성
전문인선교는 단독 사역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프로젝트 형태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선교한국 선교사들 가운데 학교나 구호시설 및 NGO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본인의 명의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로젝트 사역은 선교지역에 따라 선교의 효율성을 위해서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선교사들이 현지 부동산이나 건물을 구입 혹은 건축하면서 현지법 및 현지사정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의 명의로 재산을 등록하고 축적해 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선교사는 그럴싸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자금을 모은 후에 현지에 엄청난 건물과 부동산을 소유하고 그 부동산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니 프로젝트 재산을 다 팔아 먼저 자녀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후에 자신도 재산을 통째로 챙겨 미국으로 이주해 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학교, 교육센터, 복지센터 등 프로젝트를 핑계로 개인 명의로 축적한 재산을 처분하고 완전 사유화 하는 전략도 지능적이고 다양하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파송 교회 또는 선교단체를 바꾸는 것이다. A선교단체 및 교회에서 프로젝트로 부동산 등 재산을 축적한 다음 B선교단체 및 교회로 소속을 옮기면 그 교회나 단체에서는 과거 재산의 소유권을 묻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의 소유로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선교단체는 물론이고 파송교회까지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행태는 전방지역, 후방지역 할 것 없이 여러 선교지역에서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욱 지능화되고, 장기 선교사들 사이에 경쟁적으로 번져나가서 자기 재산 챙기기 식으로 만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것은 전통적 선교사나 전문인선교사나 모두 다 해당되는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한국교회 해외선교는 공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파송교회는 대개 현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장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 없다. 또한, 일부 선교단체는 자기 단체 선교사 수만 늘리기 위해 선교사의 사역윤리 및 재정의 투명성 문제에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선교사 이탈을 막기 위함이다. 한 단체에서 문제가 있어 징계 받은 선교사들을 낙엽 모으듯 잘 모으는 선교단체들도 있다.
따라서 이것을 방지하는 방법은 단독사역을 지양하고 적어도 5-10명 선교사가 유기적인 팀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다. 팀사역에 있어서 팀장과 재정 담당을 철저히 분리하고 프로젝트가 필요할 경우에 팀 전체의 협의 하에 각자 역할분담을 통해 투명하게 추진 ?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약 3만명의 선교사를 배출한 한국교회는 앞으로 더 많은 전문인 선교사를 보내야 하겠지만 동시에 선교사의 사역적 전문성과 품격을 높이는 일에 함께 공조해야 할 때이다.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원천무효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다. 사역윤리는 업적보다 더 중요하다.
4)전문인선교와 비즈니스 미션
1990년대 중반부터 평신도선교 형태 가운데 비즈니스 선교의 중요성이 강조되더니 최근 아프간 피랍사건 이후 비즈니스 미션이 전략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를 직시하지 않을 때 거품만 많고 결과는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선교지에서 비즈니스 미션을 통해 선교가 효과적으로 진행된 사례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글로벌 경쟁의 심화로 비즈니스의 성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가 체류비자 확보 차원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정상적인 비즈니스 미션이 아니다. 둘째는 비즈니스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비즈니스라는 도구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즈니스 미션에 참여하는 선교사들의 도덕적 ? 영적 해이를 초래하여 선교사로서 본래의 사명과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셋째는 현장에서 비지니스는 잘되는데 선교적 열매는 별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터키 김마태선교사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성공적이다. 결과적으로 비지니스선교를 원하는 경우는 많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세계선교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비즈니스 선교가 활성화되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작용만 심화시켜 한국교회 해외선교를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제한지역 선교를 위해 비즈니스 선교의 동원도 중요하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및 전략 마련이 요구된다.
마치는 말
역사적으로 보면 선교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대해 성경적 사역기조에 따라 신속히 선교정책 기조를 제고하지 않는 교회와 선교단체는 결국 사역적 리더십을 상실하게 된다. 새로운 시대의 사역 기조에 대응하지 못한 예루살렘교회 정통 사도들이 안디옥교회 바울 사도 사역팀에게 선교 리더십을 내놓게 된 것은 전형적인 사례이다. 마지막 시대에 세계교회의 선교는 당연히 종말론적 사역기조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에 복음이 증거될 때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선교정책과 전략은 성경적 및 종말론적 기조를 고수해야한다. 신속한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는 종말론적 사역기조의 핵심이요, 마지막 시대 하나님께서 세계교회 가운데 행하시는 마지막 선교과업이다.
또한 전문인선교는 종말론적 선교의 전략적 중심이며 글로벌 시대 환경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선교접근전략이고 성경적 사역기조를 매우 높은 수준에서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갈수록 악화되는 종말적 세계선교환경을 고려할 때 전문인선교는 노출된 취약점들을 극복한다면 미전도종족 전방개척 선교를 위한 보편적 사역으로 더욱 더 수용되고 확산될 것이다.
To The Last Frontiers
*선교타임즈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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