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용기] 운명 그리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

2012. 7. 3. 00:05로뎀나무/세번째

운명 그리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


죽음과 악마의 상징적인 모습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이 시대의 불안은 죄의식에 대한 불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죽음과 운명의 불안이기도 하다. 고대 말기 세계 점성술의 사상들이 르네상스에 의해 재생되었고 종교개혁에 참여한 인문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 표현된 신스토아적 용기에 대해 이미 살펴보았다. 그 그림을 보면 자기 인생이라는 배가 운명의 바람에 밀려가긴 하지만 인간은 그 배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 루터는 운명의 불안을 다른 차원에서 직면했다. 그는 죄의식의 불안과 운명의 불안 사이의 관련을 몸소 경험했다. 일상의 삶에서 만들어 내는 무수히 많은 비합리적인 두려움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그를 무서워 떨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죄의식의 불안을 정복하는 것은 운명의 불안을 정복하는 것이다. 확신의 용기는 죄의식의 불안은 물론이고 운명의 불안을 자신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그러한 두 가지 불안에도 '불구하고' 확신의 용기는 자기를 드러낸다. 이것이 섭리 교리의 진정한 의미이다. 섭리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관한 어떤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운명과 죽음에 관한 확신 있는 용기의 종교적인 상징이다. 왜냐하면 확신의 용기는 죽음을 향해서까지도 '불구하고' 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죄의식의 불안과 죽음의 불안 사이의 관계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스토아주의와 신스토아주의에서 본질적인 자아는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존재 자체에 속해 있고 비존재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불안을 정복한 본질적 자아의 힘을 지니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기꺼이 떠맡는 용기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한 영혼 불멸성의 학설이 지니고 있는 진짜 의미이다. 우리는 이 학설에 관하여 논의 할 때 불멸성에 관한 논증은 그대로 놓아두고 (심지어 플라톤의 '파이돈'(Phaidon) 에 제시된 것까지), 죽어가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에 집중해야 한다. 플라톤이 회의적으로 다룬 모든 논증들은 소크라테스의 용기, 즉 자신의 죽음을 자기 긍정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용기를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인들이 파괴하려고 하는 자아는 자신이 지닌 존재의 용기 안에서 그 자신을 긍정하는 자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는 두 자아의 관계에 관하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자아들이 숫자적으로 두 개이기 때문이 아니라 두 가지 양상을 지닌 하나의 자아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존재의 용기를 위한 시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자기 죽음에 대한 긍정을 자신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단계를 생략한 자기 긍정은 용기의 시험, 즉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비존재를 대면하는 시험을 회피하려고 애쓴다.

서구 세계가 부활이라는 기독교적 상징으로 대체해 버린 불멸성에 대한 대중적인 믿음은 용기와 도피의 혼합물이다. 그것은 자신이 죽음을 직면한 상태에서도 자기 긍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자신의 유한성을 무한히 지속시킴으로써 실제적인 죽음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고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모순 논리이다. 그런 태도는 당연히 끝이 있어야 하는 것을 끝이 없게 만들어 버린다. '영혼의 불멸성'은 자신의 필연적인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용기를 위한 어설픈 상징이 되었다.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의 용기는 영혼 불멸성의 학설에 바탕을 두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이며 파괴할 수 없는 불멸의 존재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긍정 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실체의 두 상태에 속해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시간을 넘어서는 것임을 알았다. 모든 사람이 두 상태에 속해 있음을 고대 세계에 알려 주는 일은 다른 어떤 철학적 고찰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용기가 행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몸소 떠맡은 소크라테스적 - 스토아주의와 신스토아주의 - 용기에는 한 가지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과 영원의 두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독교에 따르면 우리는 본질적인 존재에서 소외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본질적 자아를 인식하기에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부인하게끔 속박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이 '죄의 보상'이 아니라는 확신의 상태를 통해서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용납될 수 없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용납받았다는 상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대 세계가 기독교에 의해 변모되었고, 그 속에서 죽음을 직면하는 루터의 용기가 뿌리내렸다. 이러한 용기를 밑받침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의심스러운 불멸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용납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루터에게 죄와 정죄를 떠맡는 용기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운명과 죽음마저 떠맡기 위한 기초이기도 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초월적인 안전과 초월적인 영원과의 만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 참여하는 자는 영원 속에 참여한다. 그러나 하나님 속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용납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용납하심을 우리가 인정해야만 한다.

루터는 자신이 전적인 절망(Anfechtung)의 공격이라고 묘사한 완전한 무의미함의 소름끼치는 위협을 경험했다. 그는 그 순간을 모든 것 - 그의 기독교 신앙,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확신, 종교개혁, 죄 용서 - 이 위협받는 사탄의 공격으로 느꼈다. 이러한 절망의 극단적인 순간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고, 존재의 용기에는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한 순간에 루터는 자신의 글을 통해 현대 실존주의가 절망에 대해 말하던 것을 미리 내다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지막 말이 아니었다. 마지막 말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진술하는 첫째 계명이었다. 그것은 루터에게 인간이 무의함의 심연 속에서도 인식할 수 있는 인간 경험 속의 무조건적 요소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그를 구했다.

루터가 가장 강력한 대적자이고 재세례파이며 종교 사회주의자인 토머스 뮌처(Thomas Munzer) 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모든 유한한 것이 그 유한성을 드러내고 종말에 이르게 되며, 불안이 마음을 사로잡고 기존의 모든 의미들이 붕괴되는 궁극적인 상황에 대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만이 자기를 강하게 나타낼 수 있고 모든 상황을 혁명적인 행위로 표현하는 존재의 용기로 변모시킬 수 있다. 루터가 교회적인 개신교를 대표하는 반면, 뮌처는 복음적 급진주의를 대표한다. 두 사람은 모두 역사를 실현해 나갔지만, 미국에서는 뮌처의 시각이 루터의 시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모두 무의미함을 불안을 경험했고 그것을 기독교 신비주의가 만든 용어들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 위에 바탕을 두고 있는 확신의 용기를 초월했다. 그들은 신비적인 연합에 바탕을 둔 존재의 용기에서 많은 요소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마지막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용납됨을 용납할 수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용기는 의심과 무의미함의 불안이 어디에나 퍼져 있는 현 시대의 시각 속에서 연합될 수 있는가?

<존재의 용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