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용기] 신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존재의 용기

2012. 6. 30. 02:18로뎀나무/세번째

신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존재의 용기


개별화의 축은 신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종교적인 경험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거기에서 유래한 용기는 종교적인  경험 속에서 표명되는 개인적인 현실에서 확신의 용기이다. 신비적인 연합과 구별하여 이 관계를 용기의 원천과의 인격적인 교감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두 유형은 대조되긴 하지만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별화와 참여의 극적인 상호 의존성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개신교 내에서 확신의 용기는 종종 믿음의 용기와 동일시 된다. 그러나 확신은 믿음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적절치 못하다. 믿음은 신비적인 참여와 개인적인 확신을 모두 포용한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상당히 개인적인 차원의 표현으로써 종교적인 만남을 묘사한다. 성서주의, 특히 종교개혁자들의 성서주의도 이러한 점을 강조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체계 속의 객관적이고 양적(量的)이고 비인격적인 요소들을 공격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위해 싸웠다. 그에게서 나타난 확신의 용기는 기독교 사상사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루터의 모든 작품, 특히 그의 초기 저작들은 그와 같은 용기로 가득차 있다. 그는 계속해서 트로츠(trotz),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가 경험한 모든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자기 긍정의 힘을 이끌어 냈다. 루터 시대의 불안을 보여 주는 여러 표현들에 따르면, 그의 용기가 정복해야 했던 부정성은 죽음과 악마의 모습으로 상징화되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동판화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Knight, Death, and the Devil)는 루터 종교개혁의 정신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표현으로서, 루터의 확신에 대한 용기와 그가 지닌 존재의 용기 형태를 보여 준다.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기사가 말을 타고 계곡을 지난다. 한쪽에는 죽음의 형상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악마가 그와 동행한다. 그는 두려움 없이,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신 있게 앞을 응시한다. 그는 혼자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그는 실존의 부정성(否定性)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용기를 가져다주는 힘에 참여한다. 그의 용기는 분명 일부로서의 용기는 아니다. 종교개혁은 중세 시대의 준(準)집단주의에서 떨어져 나왔다. 루터가 지닌 확신의 용기는 인격적인 용기였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에서 유래한 것이 었다. 교황이나 종교 회의는 그에게 이러한 용기를 결코 심어 주지 못했다. 따라서 루터는 확신의 용기를 차단하는 교리에 의존하고 있던 그들을 거부해야만 했다. 그들은 죽음과 죄의식의 불안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체계를 지지했다. 그 체계 속에는 많은 확신들이 있었지만 확실성이 없었고, 또 그 체계가 확신의 용기를 뒷받침하긴 했으나 의심할 바 없는 근거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집단은 불안에 저항하는 상이한 방법들을 제공하긴 했으나, 개인이 자신의 불안을 떠맡을 수 있는 방법은 주지 못했다. 인간은 결코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확신으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무조건적인 것을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든 존재로 만나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를 제외하면, 언제나 교회를 매개체로 하는 간접적이고 부분적인 만남이 하나님과 영혼 사이에 있었다. 종교개혁이 이러한 매개 방식을 제거하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직접적이고 전체적이며 개인적인 접근로를 열었을 때, 새롭고 비신비적인 용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것은 투지에 불타는 개신교의 영웅적인 주장 속에서, 즉 칼빈의 종교개혁과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표명되었고, 칼빈주의에서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순교를 각오하거나 권위에 저항하거나 교회와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영웅주의가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서 영웅적인 행동을 하게 하고 그들의 용기를 드러내는 데 기초가 된 확신의 용기였다. 종교개혁자들의 용기는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용기의 개별적인 형태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자유주의 개신교에서는 종종 그렇게 말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있을 법한 역사적 느낌을 사실 그 자체와 혼동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용기는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용기를 긍정하는 동시에 또한 초월하였다.

자기 긍정의 신비주의적인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개신교적 확신의 용기는 개별적인 자아를 인격적 존재인 하나님과 대결하는 개별적인 자아로서 긍정한다. 이러한 사실은 근본적으로 종교개혁의 인격주의를 후기에 나타나는 다른 모든 형태의 개인주의 그리고 실존주의와 구별되게 한다. 종교 개혁자들의 용기는 일부로서 존재하려는 용기가 아닌 것처럼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용기도 아니다. 그들의 용기는 두가지 용기를 초월하고 연합시킨다. 왜냐하면 확신의 용기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 부리박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그와 정반대의 사실을 선언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멈춘 이후에 비로소 자신의 실존에 관하여 확신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확신의 용기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유한한 것에도, 심지어 교회에도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그 용기는 오로지 하나님께 바탕을 두고 있다. 독특하고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경험되는 하나님께만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상실이나 자기 세계의 상실로 위협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