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나기 보내드립니다 (2003.07.20)

2012. 5. 12. 00:26로뎀나무/첫번째

한바탕 소나기 보내드립니다 (2003.07.20)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입니다. 더위에 축축 늘어져만 가고는 있지 않습니까?

여기 시원한 소나기 한차례 지나갑니다.

빠르게 지나가기 쉬운 현대의 삶 속에서 문학은 한 공간의 여백을 마련해 주죠.

그런데 전 문학이 믿음 생활에서도 필수적이라고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문학이 담고 있는 전체적인 구도와 시선들, 치밀하리만치 느껴지는 인물들의 성격과 갈등들, 대립적인 구조와 안온한 구조, 시대의 소용돌이 등등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성경을 읽는 것도 책과 담을 쌓은 사람이라면 그 만큼 다가가기 힘들겠죠.

무거운 이야기는 접고, 지금 소나기 쏟아집니다. 바로 아래에서...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녀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 둑에 앉아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요행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주었다.

다음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 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 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낸다. 고기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 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러고는 훌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