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스치듯 맛을 본

2017. 7. 24. 22:06선교 교회이야기

2017년 7월 23일 

어제 예배에. 
엄청. 
예배의 말씀선포 후 기도시간에
"아빠"를 불렀다. 외쳤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에서 우선 많은 부분 점검을 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1. 소리를 왜 지르나? 
2. 그렇다고 소리를 지를 수는 있나? 
- 사실, 소리지르는 표출을 거의 할 일이 없고, 그리고 삶의 예의와 테두리(자신 이외) 에 갇힌 자신이 있는 것이다. 
- 그럼에도 소리를 질러야 할 절박함이나 어떤 원함- 갈망이 없을 수도 있다. 
3. 그냥 조곤조곤 말로 하면 되잖아요? 
- 이것도 맞다. 
- 그런데, 자신이 다 생각하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감추거나 피하는 아니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4. 결국에는 훈련이란 것... 
- 언어는 공부하는 것인가? 
- 입에 말이 붙어서 저절로 근육이 움직이는 것이 모국어라고 한다. 
- 소리를 지르는 것도 훈련이라고 한다면 해야할 때는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소리라는 것이, 결국 하나님이라는 대상에게 부르짖음과 마음에 소원함. 또는 경배와 환희의 마음이 올려진다면... 
입술에 소리는 내 마음과 생각을 울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 결국 영혼육 으로 나누어 생각해 봐도
영혼의 갈망은 육신을 움직이게 하던가? 
육신의 갈망이 영혼도 일깨우게 하던가? 
이성적으로 이 소리를 지르는 결단을 하고 육신이 실행하던가? 
이 모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이 하게 되고 그 파장은 나 자신이 그대로 영향을 받도록 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내는 것이 훈련과 그대로 입술 근육에 베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전제가 좀 필요한 소리를 질러서
"아빠" 하나님을 소리질렀다. 
한편으로 이성적 판단이 강한 나로써는 뭔 요구인지 정확하지 않은 이 소리지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창자가 끊어질 만큼, 지금 목이 걸걸해질 만큼은 외친 것 같다.

......

나도 "아빠" 에 대한 어감이 좋지가 않다.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다. 
아버지라고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셨다고 했기도 했다.

그래서 인가? 
"아빠" 
정말 어색하고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럽고 그냥 하기 싫은 말이다. 
이 아빠라는 말.

지금 외치고 있어도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래도 하나님 아빠를 생각하며... 
이 외치는 것에서 나의 원함이 무엇인가? 
더 생각해 본다. 
많은 받고 싶은 것...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이 닿아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미 주어진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뭐,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니? 
어떻게 매일같이 싸우고. 
화내고, 짜증이 용솟음치고,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부어졌는가?

미치겠다. 
나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람이라는 것이 또 이렇다.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 맞닿기만 하면 도망치려고 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여지없이 자신이 없어진다. 
이 말이 딱 맞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신의 존재를 없이하려하고,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 여기에서 잠깐 명시적인 주의 안내가 필요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과 사실과 진리의 말씀이 키를 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없애려는 자살충동이 일어날 수 있다. 
명심해라. 너의 생명을 살리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신 것이 너가 너의 목숨을 끊으라고 죽으신 것이 아니지 않느냐... 죽이고 멸망시키시는 것은 사탄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너 자신의 자아를 반드시 주님이 내주하시기 위해서 죽이실 날이 오거든 받아들이라.

아무튼, 그런 감동함이 몰려와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궁무진함과 크기와 너비와 측량할 수 없는 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칠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또 어쩌자고 이런 것을 어떻게 요청하고 어떻게 받을 수 있다고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인가? 
앞뒤도 맞지않고... 
진퇴양난이 된 격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부워졌기에 살아가는 것에 기쁨과 감사가 피워졌다.

그리고 이것은 내 삶에서 사실이 되었다.

보라. 
하나님의 사랑이 닿지 않은 것이 어디있는가~

분명히. 
이런 경험을 하는 많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일깨워주도록
또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도 계속 부어지고 있음을 그냥 알리고 싶다.

이런 때에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 같다. 
김용의 선교사님의 간증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우리의 마음을 찢어 넓혀서 그 사랑을 담게 하신다고 하셨다.

찢어 넓히기에 
담대함도 없고 도망만 다니는 우리네 인생인데... 
사실, 오늘의 이 감동은 좀 다른 차원에서 그저 하나님 사랑을 너는 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맛보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하나님 사랑이 그대로 채워진다면 쓰러지지 않는(이성적 판단센) 나도 나가 뒹굴것 같다.
그리고 찢어 넓히신다는 삶으로의 표현이 너무 걸맞다. 
이미 병들어서 찢어진 내 마음.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채우기 위한 찢어짐이란 승화가 아니겠는가?

이후에 되어질 일에 대해서 걱정과 근심이 없이... 
잠시나마 맛보게된 
하나님의 사랑. 
엄청나게 큰 파장으로 나에게 다가온 감격이 되었다. 
아직 내 마음에 다 채워지지 않았고... 
그저 하나님의 사랑이란 명제로 다가온 것 같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나는 부지불식간에 요청했고, 
하나님이 조금 체험케 하셨다고 하겠다.

놀라운 그의 일하심이 
말씀으로 체험으로
그리고 순종하므로
맛본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더욱 활기차게 하는 좋은 것임은 틀림이 없다.

아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스치듯 맛보기만 해도 미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부음 받았고, 더 부어지실 것을 믿습니다. 
충만함에 더 들어가기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이제 주의 사랑에 함몰되어 내 자신은 온대간데 사라지고 주님으로 꽃피워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