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cal]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2019. 5. 23. 08:53선교 교회이야기/CPM

[Radical]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분명하고 공개적이며 상징적인 사건이다. 예수님과 더불어 죽고(죄와 자아에 대해) 그분과 더불어 부활했음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표시인 것이다. (로마서 6:1~4)

로마서 6: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는 교회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었음을 보여 주는 의식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가진 형제자매가 되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고전 12:12-13, 엡 4:4-6). 그러므로 제자를 삼는 일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눈 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신앙 공동체로 맞아들이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된다.

고린도전서 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4:4~6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지난주에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새로 세례를 받는 세 사람을 환영하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세례자는 이른바 모태 신앙을 가진 가정주부였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최근에 의롭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 실체를 처음으로 깨닫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맞아들였다. 두 번째는 제법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했지만 세례를 받거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라는 가르침을 거부해 왔던 비즈니스맨이었다. 세 번째는 알콜올과 약물 중독자로 마약을 팔아서 삶을 연명하다가 얼마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극적으로 신앙을 갖게 된 인물이었다. (얼마 전에는 해외 선교를 이끌고 있는 형제를 찾아가서 금지품, 곧 성경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 비법을 전수해 줄 테니,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 했다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 교회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역사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혀 다른 문제와 씨름하고 있던 이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이처럼 서로 사랑하며 같은 생명을 공유한 이들이 힘을 모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식구가 되는 것 역시 제자화의 중요한 단계다.

뉴올리언스신학교에서 나를 가르쳤던 짐 섀딕스 교수를 기억하는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나눠 준 어른이었다. 나로서는 큰 은혜를 입은 셈이다. 나는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들으면서도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보다는 연구실에서 대화를 나누며, 또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댁을 찾아가 식구들과 어울리며, 더불어 복음을 전하며 훨씬 큰 가르침을 받았다.

뉴올리언스로 이사한 뒤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자 마자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다시 뛰어나가려는데 아내가 뒤통수에 대고 왜 그렇게 허둥거리느냐고 소리쳤다. 섀딕스 박사와 조깅하러 가야 한다고 했더니 어이없다는 투의 질문이 날아왔다.
"조깅이라고요? 당신이 언제부터 조깅을 했어요?"
"교수님이 함께 뛰어 보지 않겠냐고 말한 바로 그 순간부터!"

사실 나는 뛰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운동장을 뱅뱅 돌거나 목적지를 두고 냅다 달리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 틈에 끼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조깅하러 가자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크로스컨트리 선수라도 된 듯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신학교 운동장을 돌든, 집 안에 앉아서 인생과 사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든, 섀딕스 박사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땀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다 한들 어떻게 그런 기회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신앙 공동체의 식구가 된다는 것은 곧 다른 이들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볼 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 및 교회와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 생명을 나눈 형제자매다. 그렇다면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서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이 제자를 삼는 사역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다.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서로 가까이 다가설 때, 비로소 복음이 온 땅에 편만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