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8. 23:09ㆍ로뎀나무/첫번째
어머니에게 (2004.05.09)
두메산골 마을에서 육 남매 중에서 셋째로 태어나서, 걸출한 키에 동리에서도 잘 나가셨다는 외할아버지에게 귀히 자라나셨다는 어머니의 소싯적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불도 없는 그 두메산골의 이야기가 아련하게만 다가오지만, 맨날 들려주시던 이야기 오늘은 제가 한번 읊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어렸을 적에 나무하시고, 장작 떼고, 부엌 불 때고, 물 길어오고, 밥하고, 빨래하고, 밭 갈고, 논에 피 잡는 일들을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고 했었죠. 그리고 정말 소설같이 그 멋있었던 아버지인,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쇠약해 졌고요. 외할머니 홀로 육 남매를 키우시기에 정말 힘들고 힘든 나날들을 보내셨다죠. 사흘에 피죽도 못 먹는 보릿고개도 지내시고, 살기 어려워 공부도 변변히 하질 못했죠. 그래도 어렸을 때, '이 다음에 크면 꼭 서울 가서 살아야겠다'는 꿈을 가지셨다고 했었죠.
그래서 여고생이 될 시기에 서울로 상경해서, 미용 견습생으로 돈 벌기 시작했죠. 먹고 살기 위해서, 남동생들 가르치기 위해서... 미용기술을 익히고, 돈 벌기 위해서 많은 슬픈 일도 있었고, 재미있는 일들도 있으셨죠. 그러다가 아버지 만나셔서 결혼하시고, 정말 숟가락 젓가락 한 벌에 덮을 이불로 시작된 신혼은...... 저희들을 낳으시고, 또 정신 없이 돈 버시고, 키우고, 생활하시고...... 지금까지 살아오시는데 평생을 다 보내신 것이지요.
꿈 많았던 소녀적의 서울에서 살면서 가진 많은 꿈들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가요? 이십 대에서 삼십 대까지의 좋은 나날들은 삶의 터전과 자식들을 위해 다 써버리시고......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것 같이, 맨날 몸 여기 저기가 쑤시다고 하셔서 조금 주물러 드리기는 하지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무엇을 더, 얼마나 지금 해 드릴 수 있는지. 아무것도 없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아직 저를 위해서 건강하셔야 합니다. 결혼식도 보셔야 하구요. 손주까지는 보셔야 하죠. 물론 대학 졸업 학사모도 쓰셔야 하고요. 그리고 어머니 마음속의 소녀의 꿈은 이제 어머니를 닮은 아이들인 저희들의 몫이 된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는데, 그 소녀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들을 보셔야죠.
끝으로 국민학교 이후로 거의 편지 안 쓰다가 쓰려고 하니. 민망하지만, 마지막으로 엄마 사랑해요. ^^--
이만 줄일게요.
엄마 속만 썩였던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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