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8. 23:30ㆍ로뎀나무/첫번째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2004.07.2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 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나는 이렇게 생각해. 예언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널리 풀어져야 하고, 그 예언의 말씀은 다시 우리가 우리의 시대를 조망해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이지. 그래서 선배들이 왜 그렇게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과 같이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외치시는지. 그 속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래서 오늘은 그 속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해. 그 속 얘기에는 말씀의 뒷이야기가 깔려있는데, 옛날 얘기를 들어 보듯이 한번 들어봐.
호세아서를 기록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남북으로 분열되었던 시대의 사람이야. 하나님의 택한 족속인 이스라엘이 예비된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로 잘 살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점차 하나님을 잊게 되고 나라도 분열된, 암울한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어. 그래서 호세아서는 북과 남으로 민족은 분열되고, 백성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던 시대에 선포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야. 이때가 대략 B.C. 740년이지.
그런데 이때에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참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명령하시지. 그건 그야말로 명령이야. '음란한 아내를 취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말도 안 돼. 하지만 호세아는 순종해서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지. 정말 이 여인은 외도를 밥 먹듯 해서 아비를 알 수 없는 아이 셋을 호세아에게 낳아 주었어. 또 호세아는 음란에 빠져 남의 종이 되고 상처투성이인 이 여인을 위해 삯을 지불하고 다시 찾아오기도 하지. 물론 하나님이 또 다시 찾아와서 사랑하라고 명하셔서 데리고 왔지만 호세아 선지자도 정말 힘들고 괴로웠을 거야.
그때에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 '호세아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호세아의 감정이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저주하고픈 여인을 보며 절망적인 마음으로(한두 번이 아니잖겠니!) 이 여인을 데리고 왔는데... 이러한 감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느꼈잖겠니. 바로, 호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낀 것이고 알게 된 것이지. 상처투성이로 찢어진 여인의 아픔과 민족의 아픔, 그리고 괴로움과 아픔으로 찢어진 호세아 자신과 하나님의 마음을 말이야. 호세아서는 민족의 아픔과 하나님의 아픔이 예언된 말씀인 것이야.
그 후로 예언의 말씀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데... 분단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중에서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지. 이때에 모든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 왕국에 종으로 잡혀가게 돼. 이 사건이 이스라엘 역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 '이는 북 이스라엘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슬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하지도 아니하였음이더라'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B.C. 586 년에는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지. 그리고 모든 남 유다 백성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말아. 몇 세대에 걸쳐서 이스라엘 민족이 타 민족에 의해 멸망 당하고, 나라 잃은, 처절한 타국의 종살이를 하게 된 것이야. 그 후 B.C. 538년이 되어서야 바벨론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의 종살이는 끝이 나. 그리하여 회복의 역사를 맞이하지.
음란한 고멜이 지아비 된 호세아를 떠나서 방탕한 삶을 산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지아비 된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 신을 섬기는 방탕한 삶을 산 것과 같지. 그리고 고멜이 결국 다른 남자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정복당하고 종살이하는 것과 같아. 그래도 호세아로 하여금 그런 여인을 다시 사랑하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겠다고 맹세하시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 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러면 이제 여기서 우리 나라를 한번 봐 주겠니.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나라의 선조들은 돌무더기, 썩은 나무, 하늘, 바다, 땅에 대고 정성을 다해 비는 삶을 살아왔었지. 그 역사 속에서 태평성대를 누리기도 했지만,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으며 참 기구한 세월들을 우리 선조들은 살아온 것이야. 그리고 불과 몇 백 년 안 된 복음의 역사를 가지면서도 그 와중에 또 많은 시련을 겪었고, 우리는 지금도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우리가 느끼기에도 타락으로 치닫고 있지. 마치 고멜의 방탕한 삶처럼 말이야.
그래서 선배들은 외치는 거야.
얘들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우리를 아프게도 하시지만, 다시 낫게 하실 거야.
하나님은 우리를 때리시지만 부은 자리에 반창고를 붙여주신단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선배가 눈망울을 지으면서 말이지. 왜 때로는 아프게도 하고, 때리시기도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뭐 병 주며 약 주듯 다시 낫게 하고 반창고를 붙여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잔 말이지.
일정하게 떠오르는 새벽 빛은 그 광선이 일정하게 점차 밝아와서 우리를 환히 비추어 주고,
땅을 적시는 늦은 비, 물을 애타게 기다리는 버쩍 마른 흙은 비가 내리자마자 흔적도 없이 마셔 버리지.
그렇게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실 하나님을 알자는 말이지. 이번 수련회에 우리가 정말 이 하나님을 정말 알자꾸나. -나도 눈망울이 지어지려 한다.
====================
참고 말씀
'로뎀나무 > 첫번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와 기도에 관한 글(2004.06.19) (0) | 2012.05.28 |
---|---|
은혜 받고 싶어도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2004.08.05) (0) | 2012.05.28 |
사랑에 대해서 (2004.06.27) (0) | 2012.05.28 |
흙을 떠주는 사람 (2004.06.03) (0) | 2012.05.28 |
딥스 이야기 (2004.05.23) (0) | 2012.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