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8. 23:37ㆍ로뎀나무/첫번째
경기와 기도에 관한 글(2004.06.19)
올림픽 경기도 한창입니다.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칩니다. 경기하니깐,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나서 한번 다시 올려봅니다. 혼돈스런 시대에 정직한 생각을 가져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 올라갑니다.
[발언대]
나는 사실 조용히 개인적으로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대는 지금 바쁜 사람, 나 같은 서생을 만나줄 것 같지도 않고, 또 만나 이야기를 해도 실마리가 풀릴 것 같질 않았다.
허나 꼭 이야기를 해야겠기에,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지성의 양심이라는 부담 때문에, 남들이 다 지나치고 있건만, 결코 후련할 것만 같지않은 붓을 들었다.
나는 평소 텔레비전을 즐겨보진 않지만 우연히 보게 된 장면. 후반 17분을 남겨놓고 한 꼴을 먹은 절박한 상황에서 당당히
한국남아의 기상이요 우리민족의 저력이었다. 그대 바로 그대가 이러한 저력을 표출시켜주었다.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엊그제 우즈벡, 천년 쌓인 회한이 다 씻겨 내리는듯한 통쾌함, 요즘같이 정치가 혼란된 리더십 부재의 소용돌이 속에선 그대가 이끄는 대표팀의 쾌거야말로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우리역사와 민족의 스트레스 해소였다.
우리는 기억한다.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5분 남겨 놓고 역전의 꼴을 세 개나 터트렸던 그대의 우람찬 다리, 아마도 지금같이 텔레비전위성 중계가 가능했더라면 그대의 분데스리가 활약상은
그대야말로 지금 이 순간 우리민족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나 도올, 그대를 사랑하는 대학선배로서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사랑을 권력으로 표출해서는 아니 된다고.
텔레비전 마이크가 차 감독에게 갔다. 첫 소감은? "하나님의 은혜로......" 첫 소감은? "주님의 은총으로......" 첫 소감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신나는 꼴이 터질 때마다 카메라는 열렬히 기도하는 그대의 모습을 비춘다.
이제 그대는 빌리 그래엄을 능가하는 세기적 전도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대는 전도사가 아니라 축구감독이다. 그대가 이끄는 축구팀은 어느 교회의 사설 팀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다. 그대는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는 개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할 공인이다.
분명 그대는 개인으로 TV화면 앞에 선 것이 아니라 대표팀을 이끄는 공인으로 선 것이다. 공인의 공적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행위는 공적 모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대의 후계감독이 불교교도였다고 생각해보자! 이번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공덕으로......" 이슬람교였다면 "알라신의 가호로......”, 우리나라는 곧 종교분쟁국가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민족에게만 국한되었던 여호와의 율법적 약속 (구약) 을 깨트린 새로운 약속 (신약) , 즉 사랑의 복음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이긴 자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는 자에게도 가는 것이요, 우리 민족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 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첫마디는 무엇이었던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야말로 복이 있도다.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
우리 팀이 주님의 은총으로 이겼다면 일본 팀은, 아랍에미리트 팀은, 우즈벡 팀은 주님의 저주 때문에 졌나? 그것이 그대의 기도의 본질인가?
예수는 무어라 말했던가? 너희가 기도할 때는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어귀에 서서 기도하지 말라.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독교의 사랑의 실천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말끝마다 매 행동마다 주님의 은총을 들먹이는 그대의 행태는 기독교신앙의 실천이 아니요, 한국기독교의 병폐적 현상의 민폐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그대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라면, 그대를 사랑하는 독실한 아내라면
그대가 말하는 "주님의 은총" 때문에 소외 당하는 이 땅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더 큰 은총을 베풀 수 있도록
도올 |
[발언대]
그러잖아도 월드컵 최종예선이 끝나면 한가한 시간에 한번쯤 나의 신앙문제를 설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러던 차에 오늘
국가대표팀 감독-. 무조건 잘 싸워서 무조건 이겨주기를 바라는 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그 기대와 희망을 고스란히 해결하고 충족시켜줘야 하는 게 바로 이 자리다. 국가대표 감독은 김교수나 나 자신이 그 동안 막연하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힘든 자리다. 때로는 가슴이 저며올 정도로 고독하고 힘들어 자다 말고 일어나 아내에게 전화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나는 대범하지도 못하고 보잘것없는 인물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기를 앞두고 숨이 막히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그릇이다. 그때마다 나는 엎드려 기도한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어린아이가 부모님 손을 잡고 가다가 무섭거나 겁이 나면 그 손을 더 꼭 쥐는 것처럼 지금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의 손을 꼭 쥐고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한다.
그러나 경기 전 벤치에 앉아 기도할 때나 경기가 끝난 후 하나님께 감사할 때나 한번도 김교수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란스러운 몸짓을 보이기 위해 그래 본 적은 없다. 내가 인터뷰에서 "주님께 감사한다" 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나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기 전 나는 우리 선수들을 감동시켜 90분 내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90분간 진두지휘하면서 한치의 흐트러짐이나 오차도 없이 매 순간 정확히 판단하고 지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경기가 무사히 끝나면 나는 바로 이런 나의 기도가 이뤄졌다고 믿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겼기 때문에 감사하고 이기지 못하면 감사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숙인 스님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신부. 수녀님들을 볼 때면 그분들의 기도 모습이나 형태가 어떤 것이든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나에겐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도사도 아니고 종교 편싸움 선봉에 선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고 힘이 생기는 우둔한 사람이다.
얼마 전 KBS - TV가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후 현장 인터뷰를 옮기는 과정에서 "주님께 감사한다" 는 인터뷰 첫머리가 잘린 모양이었다. 기독교인들이 KBS에 전화를 해서 "일부러 그랬다" 며 항의를 수도 없이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종교를 가진 열성 신앙인들이 마음에 평화는 없고 편견과 피해의식으로 모든 것을 내 입맛에 맞추려고 아우성치는 것 같아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비록 공부를 많이 한 종교학자가 아니지만 어느 종교든 투쟁만 있고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교수의 말대로 후임 감독이 부처님을 믿든, 알라를 믿든 그것은 나에게 묻고 따질 일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스스로 의지하는 신으로부터 용기와 힘, 그리고 평화를 얻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그가 아무리 공인이라 해도 그것은 지탄받아야 하는 '나쁜 짓' 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의 어느 감독은 월드컵을 앞둔 중압감에 입이 돌아가고 말았다. 또 유럽의 많은 감독들이 알코올에 빠져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지금처럼 숨막히는 때에 나 역시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지금은 한 발짝 떨어져서 기도하는 형식이나 모습보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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