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01 (2004.08.26)

2012. 5. 28. 23:46로뎀나무/첫번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01 (2004.08.26)

부재: [일급비밀]-은밀히 공개하는 악마의 편지


이 편지들을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C. S. Lewis

사랑하는 웜우드⑴에게

 

네가 요즘 맡은 환자⑵의 책 읽기를 지도하면 한편, 유물론자 친구와 자주 만나도록 신경 쓰고 있다는 이야기 잘 들었다. 하지만 좀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냐? 네 말을 듣자니, 넌 논증으로 환자를 원수⑶의 손아귀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구나.

 

몇 세기 전이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었겠지. 그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것이 입증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아주 잘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일단 옳다고 입증되기만 하면 진짜라고 믿어 버렸으니까.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처럼 생각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았기 때문에, 일련의 추론 과정을 거쳐 얻은 결론에 따라 생활방식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악마들이 주간지를 비롯한 다양한 무기를 사용해서 상황을 역전시켰지. 그 덕분에 네가 맡은 환자만 해도 어려서부터 수십 가지의 상충되는 철학들이 한꺼번에 머리 속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게야. 그래서 어떤 교리를 보아도 ''이냐 '거짓'이냐를 먼저 따지기보다는 '학문적'이냐 '실용적'이냐, '케케묵은' 것이냐 '새로운' 것이냐, '인습적'인 것이냐 '과감한' 것이냐를 따지게 되어 있지.

 

그러니까 환자를 교회에서 멀리 떼어 놓기에 가장 좋은 협력자는 논증이 아니라 전문용어란 말이다. 유물론을 진리로 믿게 만들려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거라! 그보다는 유물론이야 말로 힘차고 단호하면서도 용맹스러운 미래의 철학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해. 네 환자는 그런 데 더 신경을 많이 쓰는 족속이니까.

 

그렇지 않고 논증을 동원할 경우 우리의 투쟁 전체가 오히려 원수의 확고한 기반이 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원수도 논리에 강하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반면에 내가 지금 권고하는 것 같은 아주 실용적인 선전의 영역에서는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보다 한참 하수(下手)라는 사실이 수세기에 걸쳐 밝혀졌다.

 

아무튼 논증이라는 행위는 잠자고 있는 환자의 이성을 흔들어 깨우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야. 일단 이성이 깨어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그때 그때 드는 생각들이야 어떻게든 그 흐름을 비틀어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지만, 네 환자는 그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 찰나적인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서 눈을 돌려 보편적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치명적인 버릇을 들이게 될 게다. 그러니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시선을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 붙들어 두어야 해. 그것이야말로 '실제의 삶'이라고 믿도록 가르치되, '실제'가 무슨 뜻인지는 절대 묻지 못하게 하거라.

 

네 환자는 너처럼 순전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너는 한 번도 인간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불쾌하게도 원수는 이 점에서 우리보다 유리하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범속한 것의 압력에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는지 실감하기 힘들 게다. 언젠가 내가 맡았던 환자는 골수 무신론자였는데, 대영박물관에서 책 읽기를 즐겼지. 그런데 하루는 책을 읽고 있던 환자의 생각이 영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꼴이 보이더구나. 아차 하는 사이에 원수가 내 환자 곁에 바짝 달라붙었던 게야. 미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20년 동안이나 공들여 쌓아 온 탑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 이성을 잃고 논증으로 방어하려 들었다면 난 아마 완전히 끝장나고 말았을걸. 하지만 내가 그런 바보짓을 할 리가 없지. 나는 그 즉시 내가 제일 만만하게 쥐고 흔들 수 있는 부분을 건드리면서, 점심을 좀 먹어야 할 때가 아니냐고 일러 주었다. 보아하니 원수가 즉각 반격에 나서서, 이 문제는 점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말하는 것 같더구나 (우리로서는 원수가 사람들에게 무슨 소릴 지껄이는지 전혀 엿들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중요하고 말고. 사실 이건 오전이 다 끝나가는 자투리 시간에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야" 라고 내가 맞장구치자 환자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진 걸 보면 말이야. 이때를 놓칠세라 "점심 먹고 와서 개운한 머리로 다시 생각하자"고 얼른 덧붙이니까, 벌써 저만치 문 쪽으로 걸어가더라.

 

환자가 거리로 나섰을 때쯤에는 이미 전세가 내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석간신문이 나왔다고 외치는 신문팔이 소년과 거리를 지나가는 73번 버스를 보여 주었지. 그리고 그가 계단을 다 내려서기도 전에, 머리 속에 굳건한 확신 하나를 단단히 심어 주었다.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을 읽고 있을 때는 온갖 괴상 망측한 생각이 다 들 수 있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이 건강한 '실제의 삶' (여기서 실제의 삶이란 버스와 신문팔이 소년을 가리키는 말이다) 앞에 '그 따위 관념'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확신 말이야. 환자 자신도 그 때가 위험한 고비였다고 느꼈던 모양인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현실의 체감이야말로 혐오스러운 일개 논리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궁극적 안전장치"라는 말을 훗날 입버릇처럼 뇌까리곤 했다. 물론 그 환자는 지금 우리 아버지 집에 안전이 거하고 있지.

 

이제는 내 말을 좀 알아듣겠느냐? 수세기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공작해 온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 해.

 

꼭 한 가지만 명심해 두거라. 기독교에 대해 방어를 하겠답시고 과학(그러니까 진짜 과학)을 활용하려 들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은 결국 네 환자를 부추겨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사색하게 만들고 말 게다. 현대 물리학자들 가운데 그런 애석한 사례가 많이 있었지.

 

만일 환자가 계속 과학을 가지고 장난치려 들거든, 경제학과 사회학을 들이 파게 하거라.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소중한 '실제의 삶'에서 멀어지는 것만큼은 용납하면 안돼.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방법은 과학서적 따위는 아예 읽지 못하게 하면서 '그런 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럴듯하고 막연한 느낌만 심어 주는 거지. 어쩌다 주워들은 이야기나 이런저런 쪼가리 독서에서 얻은 것들이야말로 이른바 '현대과학의 부단한 탐구가 성취한 결실'이라고 믿게 만들거라.

 

너의 임무는 환자의 곁을 지키며 그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네 또래 젊은 악마 놈들 하는 말만 들으면, 우리 일이 선생질인 줄 알겠더라!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주석}

Wormwood. ''이라는 뜻. 쑥은 쓴맛, 고난, 고뇌를 상징한다.

여기서는 스크루테이프의 조카이자 신참 악마의 이름으로 쓰인다.

patient. 각각의 악마들이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⑶ 악마의 입장에서 '원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출처 :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중에서 첫 번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