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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nges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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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2 -
도마의 신 - 양학선
자신만의 것에 대한 높은 성취와 성과란 이런 것인가? 아직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기술이라고 하는 "양학선"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누구도 잘 따라하는 범용성을 지니고 쉬워야 한다는데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근 읽어본 글에서는 도전할 때에 어떻게를 묻는 사람과 왜를 묻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왜를 묻는 사람에게 도전을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역시 이것은 당위성과 신념에 대한 도전인 것인지? 단지, 적용하는 과정과 기술은 헤쳐나가는 것일 뿐 투지와 신념이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또 얼마나 나에게 달린 문제인가? 내가 해야만 하는 문제인가가? 중요한 점인 것 같다. -------------도마의 신 - 양학선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부..
2012.08.07 -
[존재의 용기] 초월된 유신론
초월된 유신론 무의미함을 자신 속으로 끌어들이는 용기가 우리가 '절대적 신앙' 이라 부르던 존재 기반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특정한' 내용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내용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절대적 신앙의 내용은 '하나님 위에 계신 하나님(God above God)' 이다. 절대적 신앙과 그로 인한 결과 - 근본적인 의심과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용기 - 는 하나님에 대한 유신론적 개념을 초월한다. 유신론은 하나님에 대한 구체화되지 않은 긍정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런 의미의 유신론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무슨 뜻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전통적이고 심리학적인 함축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내용이 없는 유신론도 하나님을 인용함으로써 마치 ..
2012.07.22 -
KOSTA ?? - 우리는 왜 코스타를 하는가
KOSTA(코스타) 집회를 소개해요. 최근 코스타 집회가 벤쿠버순복음교회에서 열렸었네요. (2012 Vancouver KOSTA : 6/26~28) 아래 영상은 코스타(KOSTA) 에 관한 안내 영상입니다. 내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집회 중에 하나이죠. ^^;; 왜냐하면, 시대의 흐름을 깨닫게 해 주며, 그렇게 이시대 주님의 비전과 꿈을 청년들에게 심겨주기 위해서 말씀 전하는 강사님들도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작점. - 역사. 방향성. - 목적. 어떤 중심점을 가지고 움직이는가? 를 각 년도별 주제로부터... 그리고 펼쳐지는 강의들과 간증과 설교들로 말이죠. 코스타 - (KOSTA : KOrea STudent All nations) 이 시대 크리스챤 청년 리..
2012.07.18 -
2012 Vancouver KOSTA 개회예배-모세, 십자가 리더십으로 세움
매번 듣는 모세 이야기 나온다. 아주 탁월한 통찰력과 풍부한 예화, 하나님을 만나는 플러그인(?)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 그 메시지를 다시 모세를 일으키는 하나님에 대한 주제 말씀으로 이으시고.. 코스타를 여는 예배를 동영상을 통해 경험하면서 다시금 새롭게 생각되는 것은 항상 기본기를 두르려 점검케 한다는 것!! 2012 Vancouver KOSTA 개회예배 1/2 2012 Vancouver KOSTA 개회예배 1/2 2012년도 Vancouver KOSTA가 6월26일부터 28일까지 밴쿠버순복음교회당에서 열렸다. 개회예배에서 KOSTA 국제총무 유임근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2012 Vancouver KOSTA 개회예배 2/2 2012 Vancouver KOSTA 개회예배 2/2 2012년도 V..
2012.07.18 -
[존재의 용기] 존재를 밝혀 주는 비존재
존재를 밝혀 주는 비존재 모든 형태의 존재의 용기는 그 자체로 계시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을 보여 주고, 존재의 자기 긍정이 부정성을 극복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은유적인 진술 - 자체에 대한 모든 주장은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이다 - 을 사용하면 존재가 비존재를 포함하지만 비존재가 그것을 지배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포함한다'는 말은 존재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과 반대되는 비존재까지 끌어안는다는 의미를 지닌 공간적인 은유이다. 비존재는 존재에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존재에서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이중적인 부정 없이 '존재' 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즉, 존재는 존재의 부정에 대한 부정으로 여겨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존재의 힘'이라는 은유로써 존재를 가장 잘 묘..
201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