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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용기] 절대적 신앙과 존재의 용기
절대적 신앙과 존재의 용기 나는 존재 기반과의 신비적인 연합에 바탕을 두는 존재의 용기에 대한 설명과, 그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에 바탕을 두고 있는 존재의 용기에 대한 설명에서 믿음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부분적인 이유는 그렇게 하면 믿음의 개념이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뭔가 믿지 못할 것에 대한 믿음' 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아닌 다른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신비적인 연합이나 인격적인 만남이 믿음의 개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한을 넘어 무한으로 나아가는 영혼의 고양 - 영혼을 존재 기반과의 연합으로 이끌어 주는 - 에 믿음이 깃들여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믿음의 개념에는 그..
2012.07.05 -
[존재의 용기] 운명 그리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
운명 그리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 죽음과 악마의 상징적인 모습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이 시대의 불안은 죄의식에 대한 불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죽음과 운명의 불안이기도 하다. 고대 말기 세계 점성술의 사상들이 르네상스에 의해 재생되었고 종교개혁에 참여한 인문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 표현된 신스토아적 용기에 대해 이미 살펴보았다. 그 그림을 보면 자기 인생이라는 배가 운명의 바람에 밀려가긴 하지만 인간은 그 배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 루터는 운명의 불안을 다른 차원에서 직면했다. 그는 죄의식의 불안과 운명의 불안 사이의 관련을 몸소 경험했다. 일상의 삶에서 만들어 내는 무수히 많은 비합리적인 두려움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2012.07.03 -
[존재의 용기] 죄의식 그리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
죄의식 그리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 개신교적 확신의 용기의 중심에는 죄의식에도 불구하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가 있다. 루터는 불안의 주요 형태로 죄의식과 정죄의 불안을 경험했다. 이러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긍정하는 용기는 우리가 확신의 용기라고 부르던 그 용기이다. 그것은 신의 용서에 대한 개인적이고 전체적이며 확신에 뿌리내리고 있다. 인간이 지닌 모든 형태의 존재의 용기에는 용서함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심지어 신집단주의 내에도 그러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신집단주의에는 진정한 개신교에서 현저하게 눈에 띄는 인간 실존에 대한 해석이 없다. 또 거기에는 심오하면서도 역설적인 역사 내의 운동도 없다. (신의 용서라는 관점에서) "불의한 자가 의롭게 된다." 는 루터의 공식이나 "용납되지 못할 자가..
2012.07.02 -
[존재의 용기] 신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존재의 용기
신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존재의 용기 개별화의 축은 신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종교적인 경험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거기에서 유래한 용기는 종교적인 경험 속에서 표명되는 개인적인 현실에서 확신의 용기이다. 신비적인 연합과 구별하여 이 관계를 용기의 원천과의 인격적인 교감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두 유형은 대조되긴 하지만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별화와 참여의 극적인 상호 의존성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개신교 내에서 확신의 용기는 종종 믿음의 용기와 동일시 된다. 그러나 확신은 믿음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적절치 못하다. 믿음은 신비적인 참여와 개인적인 확신을 모두 포용한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상당히 개인적인 차원의 표현으로써 종교적인 만남을 묘사한다. 성서주의..
2012.06.30 -
[존재의 용기]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라는 확신의 용기, 믿음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라는 확신의 용기, 믿음 - 이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다. 아래의 짧은 구절에서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라는 확신의 용기, 믿음에 대한 혜안을 얻는 것 같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아래의 이성적인 이해와 사고를 넘는 강력한 믿음 가지는 것은 말씀에 기록된 데로 주님이 믿음 주시는 것 보다는 못하는 것 같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장 17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빌립보서 3장 9절 ^^;; ----------------..
2012.06.30 -
[존재의 용기] 용기를 상실한 이 시대를 통찰한다.
아래 책 내용에서 한마디로 느낀 소감. 용기를 상실한 이 시대를 통찰한다!! --------------------- 비창조적 실존주의 태도 속의 절망의 용기 나는 앞부분에서 실존적 절망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창조적인 용기를 지닌 인물들을 다루었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냉소주의라 부르는 비창조적 실존주의 태도가 있다. 오늘날의 냉소가들(cynics)은 그리스 사람들이 냉소가라 부르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리스인들에게 냉소가는 이성과 자연의 법칙에 근거하여 당대의 문화를 비평하던 사람이었다. 냉소가는 혁명적인 합리주의자였고 소크라테스의 추종자였다. 현대의 냉소적인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기꺼이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성에 대한 믿음이 없고, 진리의 기준도 없으며, 가치의 ..
2012.06.27